이제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가셔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새번역 성경은 그렇게 하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실 수 밖에 없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밖에 없었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Ἔδει(에데이)라는 단어는 미완료과거 시제로서 3인칭 단수 능동태의 단어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통과해야만 했다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반드시 예수님 당신께서 원하셔서 능동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이고 필연적으로 그 길을 가야만 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얼마든지 요단강 동편의 길로 사마리아를 피하여 올라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굳이 유대인들에게는 적대적이어서 위험하기도 했던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서,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을 수가성의 한 여인을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 길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 Ἔδει(에데이)의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때에도, 사마리아를 빼고 건너뛰고서 땅끝을 향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는 길은 반드시 가야하는 Ἔδει(에데이)의 길입니다. 율법은 담을 쌓고 경계를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은 막힌 담을 허물고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본질 중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의 삶은 ‘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처럼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나도 반드시 거쳐서 가야하는 ‘Ἔδει’(에데이)의 길, 나의 사마리아는 무엇이며, 어디이며, 누구일까요? 직장에서, 집안에서, 목장과 교회에서, 우리 동네에서 혹시 그런 분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