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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말씀

2019.07.21. 마르다의 좋은 선택 "누가복음 10:38~42"

정용재 0 769

오늘 본문의 사건 또한 누가복음에만 소개되는 사건입니다. 교회를 조금 다니신 분들은 한두 번은 설교를 들었을 말씀입니다. 주로 봉사보다 예배가 더 중요하다는 뉘앙스의 설교입니다. 마리아는 예배라는 더 좋은 편, 혹은 가장 좋은 편을 선택해서 마침내 향유옥합을 깨트려 주님께 드릴 수 있을 만큼 헌신이 깊어지고 자라게 되었다는 그런 메시지입니다.

 

반면에 마르다는 예배는 드리지 않고 봉사만하다보니 시험에 들어서 불평불만만 일삼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서,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어서, 교회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폄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성경 해석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 서서 교회를 세우고 있는 수많은 마르다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힙니다. 철이 일찍 들어버려 언제나 해야할 일이 먼저 눈에 띄는 마르다인 저도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섭섭한 마음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과 씨름하며 기도하던 중에 한 가지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책망한 이유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었고, 마리아가 선택한 것이 더 좋은 것이었거나 혹은 최상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리아만 좋은 편을 택한 것이 아니라 마르다도 좋은 편을 택했습니다. 마르다 또한 빼앗기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배를 택했고, 마르다는 봉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말씀 듣는 예배를 택했고, 마르다는 주방봉사하는 예배를 택한 것입니다. 둘 다 예배를 택하였고 좋은 편을 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한 마르다의 문제는 사랑과 의욕이 과해서 너무 많이 그리고 잘 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선택권까지 좌지우지 하려는 자리,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서 버린 것입니다. 성령님의 지휘를 따라 자기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음식이 한 가지든, 두 가지든 마르다의 섬김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성장의 단계에 따라 좋은 편이 다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 편일 때가 있고, 섬김의 자리에 서는 것이 좋은 편일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더 성장하여 이후 섬김의 기쁨을 선택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늘 음식으로 봉사했는데, 마리아는 마르다가 상상조차 못한 방법으로, 향유옥합을 깨트려 예수님께 부어드려 십자가를 준비하는 섬김의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신 것을 기억하고, 각 지체를 지휘하는 역할은 나의 역할이 아니라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않고, 성령님의 지휘를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순종했더라면 나도 행복하고, 예수님도 행복하고, 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들도 행복하고, 마리아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성령님께 순종하는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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