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8. 내가 올라가야할 ‘오르난의 탁작마당’은 어디? "역대상 21:17~18"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의 생애에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징계하신 두 번의 사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밧세바 사건이요 둘째는 오늘 본문과 관련된 인구조사의 사건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의 인생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한편으로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티끌로 지어진 연약한 죄인이요,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와 같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져주신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인구조사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진노할 만큼 심각한 죄였던가 하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나라마다 죄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의 죄의 기준이 저와 여러분의 생각과 다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는 일이라면, 내 생각과 달라도 그것을 심각한 죄로 알고 피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을 가졌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잃지 않았던 다윗의 비결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인구조사라는 죄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여러 번의 인구조사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지시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구조사 자체가 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타이밍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같은 일도, 같은 말도 타이밍에 따라 그 성격과 열매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다윗은 평화로운 중에, 전쟁의 위협이 전혀 없는데도 싸움에 나갈만한 군대의 숫자를 세는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우리는 그 배경을 알 수 없으나 요압이 인구조사를 반대할 만큼 그 의도가 선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떤 의도였을까요? 많은 분들이 이 인구조사의 본질은 “교만”이었다고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번영인데, 마치 자신의 힘으로 일군 것처럼, 자신이 얼마가 강성한지 확인해 보고 과시해 보고 싶은 그런 교만한 마음....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혹시 내 안에 하나님의 축복을 나의 교만으로 바꾸어버린 자리는 없는지 살펴보고 돌아볼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징계를 선언하십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그토록 좋아하셨던 다윗의 다윗됨이 드러납니다. 그는 즉시 자세를 낮춥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고 의지합니다. 자신의 죄를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잠간 심판의 고삐를 늦추셨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그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낮은 자로서 예배합니다. 바로 그 자리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타작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타작마당은 심판의 자리이며 동시에 긍휼의 자리입니다. 받은 축복을 나의 교만으로 바꾸어 버린 것을 깨닫게 해 주신 자리이며, 회개의 자리이며 예배의 자리입니다. 내가 즉시 뛰어 나아가서 낮은자로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 대가를 지불하고 예배해야할 나의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