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8. 물세례, 성령세례, 불세례 "누가복음 3:1~6"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의 특별한 출생의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요한이 사역을 시작합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이나, 왕궁에 있는 권력자들에게 내리지 않고, 광야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면, 몸은 현실 세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심령이 가난한 광야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 부근 각처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예언의 성취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 그 분이 오실 길을 곧게 하고 평탄케 하는 사역이라는 말씀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메시야가 오실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회개할 때, 메시야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회개는 은혜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일까요?
첫째, 모든 골짜기를 메우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깎아내는 것입니다.
셋째, 구불구불 굽은 길은 곧게 펴는 것입니다.
넷째, 울퉁불퉁 요동치는 길은 평평하게 다듬는 것입니다.
회개의 물세례를 전파하던 세례요한은 자신 뒤에 오실 메시야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물세례의 사건을 넘어 우리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성령님의 세례와 불세례가 경험되어지고 누려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해 봅니다.
성령세례는 내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성령님께서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좌정하시는 바로 그 사건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때가 되면 성령님의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님의 열매도 나타납니다.
불세례는 태워 소멸하는 것입니다. 내 내면의 깊은 상처와 아픔, 도무지 내 힘으로는 떨쳐낼 수 없는 원한과 분노와 복수심, 그리고 죄와 죄의 결과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 소멸해 주시는 은총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문맥상에서 보면 불세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구원을, 불세례는 심판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구주이며 동시에 심판주로 오셨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