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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강단이 낮아져서 불편한 분들이 계시지요?

석정일 0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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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수용성을 기르는 통로로 삼아 보십시다.


최근에 본당의 강단이 없어지고, 정면에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사용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불편한 변화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흡족한 변화일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우리 본당은 원래 길이 방향으로 길게 사용하였는데, 코로나 중에 넓이 방향으로 돌려서 사용해 왔습니다. 실험적으로 임시로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 스피커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있었고, 강단도 과거 찬양대가 쓰던 것을 옮겨서 사용하다보니 강단으로서는 다소 비좁기도 하고 또 층이 져 있어서 무대로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배당 사용방향을 완전히 고정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스피커의 방향을 조절하면서, 프로젝터의 위치도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면에 프로젝터 스크린을 설치하다 보니 강단을 낮추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강단을 새로 제작하면 또 다시 바꾸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하고, 또 높이는 어느 정도가 적합할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최종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강단을 아예 없앨 경우의 장점도 있기 때문에 시도를 해 보았는데, 설교할 때 설교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를 위한 작은 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이제는 프로젝터 스크린에 설교자의 목이 딱 걸리는 문제가 또 생겨서 보기에 거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정면 중앙에 큰 스크린이 있으니, 찬양을 드릴 때나 설교 시간에 모든 시선이 강대상이 있는 한 가운데로 모아지는 장점이 있고, 강단을 없애니 찬양팀이나 발표하는 팀이 훨씬 더 넓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생겼고, 화면에 성경구절이나 찬양을 크게 띄웠다 작게 띄웠다하면서, 영상에서 설교자가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하는 문제도 해결되어 방송실의 영상 컨트롤이 더 쉬워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예배당이 원래 장갑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천정이 낮아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든 좋아지는 부분이 있는 만큼, 불편해 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예배당 건물의 한계 속에 최적의 선택을 하기까지 당분간 조금 더 실험적인 변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나에게 조금 불편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더 좋아질 변화를 기대하시면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 주시되,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 더 기다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혹시 강단이 없어져서 설교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불편하신 다운가족 여러분들께서는 앞자리에 앉으면 설교자가 키가 작아도 잘 보이니 비어있는 앞자리로 한 번 이동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나에게 맞추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화에 대한 수용성은 지금과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성장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도 다른 사람을 나에게 맞추는 대신,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어주려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치열한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고린도전서 919~27)

 

나에게 다소 불편한 변화가 일어날 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나 자신을 변화시켜보는 변화의 수용성을 기르는 훈련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이미 그렇게 해 주시고 계신 다운가족 여러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석목사 올림>



고린도전서 9장 19~27절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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