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b)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6월에는 로희와 민애도 한국에 들어올 계획입니다.
어느새 3개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초기 치매이신 장모님을 3개월 가까이 저 혼자서 모시고 지낸다는 것이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미국에서 출산한 딸에게 친정엄마의 도움의 손길이 너무나 절실하였기에 그리고, 아기를 낳기만 하면 우리가 키워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기에 충분히 혼자서 장모님을 돌볼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안심시켜서 아내를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그렇게 장담한 것은 아빠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도록 딸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녀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더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장모님을 돌보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장모님께서 기다려도 기다려도 집에 오지 않는 딸 때문에 때로는 괘씸하다고 섭섭해하시고, 때로는 저와 아내가 싸워서 갈라선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시고, 때로는 당신의 딸이 남편 목사님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시는 모습이 보기가 안스러웠습니다.
거기다 TV 속에서 영상으로 본 것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셔서, 밤새 로희가 없어졌다고 집안 구석구석을 찾으시고 제 방문을 쉴새 없이 두드리셔서 밤잠을 설칠 때도 있었습니다. 세 달 뒤에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조차 못하시고, 미국에 갔다는 것을 돌아서면 잊어버리셔서 은영이 언제 오느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을 물어보셨지만, 그래도 달력을 걸어놓고 하루 하루 X표를 해 드리면서 함께 돌아올 날을 기다렸는데, 그 하루하루가 쌓여 80일을 지나고 마침내 아내가 돌아와 한 방에 누워있으니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싶습니다.
장모님은 혼자서는 식사 한 번 하시는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또 제대로 음식도 드시지 않기 때문에, 제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음식을 떠먹여 드렸는데, 얼마나 열심히 먹여드렸는지 아내가 없는 동안에 체중도 5Kg이나 느셨고, 체력도 더 좋아지시고 힘도 세지셨습니다. 이대로면 100살까지도 넉넉히 사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합니다.
5월 10일이 민애의 법학대학원 졸업식 날이고, 7월 30~31일에는 미국변호사 시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로펌(법률회사)에 취업을 한 상태에서 합격률 50%에 불과한 변호사 시험에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서, 5월 초에 아내가 다시 미국에 가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육아를 도와줄 계획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또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민애가 로희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에서 미국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또 갓난쟁이 로희가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해야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운교회 식구들에게 미안해서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고 하니, 교회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로희를 조금 더 빨리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장모님도 증손녀의 얼굴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애는 우리가 로희 육아를 책임져 주는 동안 한국에서 열심히 시험준비에 집중하다가, 7월 말에 혼자 미국으로 들어가서 변호사 시험을 보고 난 후에, 사위와 함께 다시 한국에 나와서 로희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장거리 비행기 여행이 갓난쟁이 로희에게 해롭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이 방법은 염두에도 두지 않게 되었었는데, 벌써부터 장거리 비행기 여행이 로희에게 어떤 해로움도 끼치지 않도록 기도하며 얼굴로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제가 누리는 이런 기쁨과 감사가 다운가족 여러분들 가정 가정에도 넘치게 임하시기를 우리 주님께 간구합니다. 다운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석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