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 고난주간 특새, 예배당에 나와서 함께 합시다.<2024.3.24.>
고난주간 요일별 예수님의 행적(자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난주간 특새;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조금이라도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이 종려주일이고 부활절을 앞둔 이번 일주일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사실 교회가 주일에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주일이 부활주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교회가 절기로 지키는 이 부활주일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초실절과 같은 날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유월절과 같은 날이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초실절과 같은 날이라니.... 게다가 성령님께서 내리신 “성령강림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순절 혹은 칠칠절이라는 이름으로 지켰던 절기이고,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언약인 율법을 받은 날입니다. 그 날 새언약이신 성령님께서 오셨다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분들 가운데 교회 절기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마도 갈라디아서 4장 9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에 기초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여기서 날은 안식일이요, 달은 월삭(매월 첫날 제사를 드리던 것)과 같은 것이요,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같은 것이요, 해는 안식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지키는 것은 매우 부정적인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구원”을 위해서 “두려움”으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율법적인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지, 율법 자체가 나쁘다거나 혹은 유익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절기를 주셨을 때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절기를 지킬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날이 동일하게 소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셨던 절기들을 소중히 여기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여러 요소들을 균형 있게 붙잡을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부활주일을 앞두고 늘 2주간의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져왔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는 것 자체 만이 목적이었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끔찍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대속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실감 나게 느껴보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고통이 담긴 희생”을 몸으로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계속해서 이어질 고난주간 특새는 현장에 나와서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고통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유월절 그날 밤, 겟세마네의 간절한 기도 후에 밤새 주무시지 못하고 새벽부터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재판 받으신 우리 주님께서 식사나 제대로 하셨겠습니까?
밤잠 새벽잠을 설치기도 하고 또 하루종일 몽롱하게 지내게 될 수도 있지만, 고난주간 특새를 통해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몸으로 느껴보는 그런 기회를 가져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더 큰 기쁨으로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단지 저와 여러분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와 여러분에게 새하늘과 새땅을 선물하고,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과 함께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마음껏 누리게 될 천국을 선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엡1:10)”
바로 그 영광스러운 천국을 더 선명하게 그리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벧후3:11~12)”하는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석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