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는 싫다. 역겹다. 도무지 기쁘지 않다. 받지 않겠다. 시끄럽다. 집어치워라.
우리 주님께서 아모스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종교 활동과 예배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성대하고 화려한 종교 활동과 예배를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새벽설교를 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십자가 아래 앉았는데 “나는 너의 ‘기도’가 싫다, 역겹다, 도무지 기쁘지 않다, 시끄럽다, 집어치워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 형식으로 흘러가려고 하는 저의 기도시간을 무거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의 예배를 향해서 저토록 분노하고 계십니까? 예배의 형식은 요란하고 화려했으나 ‘삶의 예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 없이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탐욕’만 추구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 예배에 와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살았던 용서해 주시고 복 내려 달라고 기도하고, 돌아가서는 또 같은 삶을 반복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모스 당시와 다를 바 없는 것은 아닌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아모스 시대에는 형식이라도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본질은 물론이요 형식조차도 없어져 아모스 시대보다 더 심각한 때는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때로 형식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기도 하지만, 본질은 반드시 형식 안에 담기게 되어 있습니다. 본질을 담은 형식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뜻이 좋아도 본질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 예배 순서를 조정할 때 저는 바로 이점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우리교회의 예배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인간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찬송할 때마다 아,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불러 주셨구나하는 감사와 감격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그 부르심에 대한 첫 응답으로 우리는 헌금을 찬양과 더불어 드립니다. 헌금에 담은 감사와 사랑과 순종과 헌신의 고백을 찬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첫 순서가 헌금인 것이 마음에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정의감에 불탄 마음일 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내가 얼마나 돈에 민감하고 돈을 숭배하고 돈에 매여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돈과 마음은 따로 놀지 않습니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에 갑니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는 내가 어디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는가를 살펴볼 때 가장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일체 개인헌금 내역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개인의 헌금 내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인 저는 물론이요 장로님들도 개인 헌금내역을 보지 않습니다. 오직 담당자 한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토요일 각 가정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주일예배 헌금준비 시간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헌금을 준비하는 시간이 한주간의 삶의 예배의 마침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토요일 저녁 자녀들과 함께 한 주간 각자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는지 감사의 제목을 나누고 (혹은 혼자서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한 주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기도를 담아서 주일헌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10분 전에는 예배당에 도착해서 준비한 감사와 기도의 그 마음으로 기도하며 예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일 예배가 죄책감 해소하기만 반복하는 예배가 아니라, “주님 한 주간 세상 한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은총 가운데 힘써 살다가 주일 공동체의 연합예배 가운데 나왔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다음 한 주간도 승리하며 살 수 있는 새 힘을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선순환을 만들어 가는 감사의 예배, 감격의 예배, 기대의 예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일 예배는 ‘죄책감 해소’의 시간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삶의 예배를 결산하는 잔치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한 주간의 삶의 예배를 위한 결단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싫다. 역겹다. 도무지 기쁘지 않다. 받지 않겠다. 시끄럽다. 집어치워라.” 말씀하시는 주일예배가 아니라 “너무나 좋구나. 향기롭다. 기쁘다. 고맙다. 또 듣고 싶구나. 복을 주지 않을 수 없구나. 함께 하마.” 그렇게 즐겁게 받아 주시는 주일 예배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석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