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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편지

(87) 평범하고 티격태격하는 가족, 정말 감사한 축복입니다.

정용재 0 1372

지난 금요일 새벽은 정말 아찔한 날이었습니다.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떠 보니 526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부목사 시절에도 한 번도 새벽예배 설교를 펑크 낸 적이 없었는데, 하마터면 펑크를 낼 뻔한 날이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 경우 당황하지 말고 조용히 자습을 하시도록 사무장님께 당부 드린 적이 있기 때문에, 저는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얼른 옷을 입고 거울 한 번 보고 즉시 빠른 걸음으로 교회로 나왔는데, 531. 송집사님, 여장로님, 홍목사님이 당황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수능을 마치고 홍대거리에서 노는 대신 교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우리 수험생 자녀들이 새벽예배의 자리에 와 있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날, 너무 늦지 않은 것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새벽설교 직전에 수험생 자녀들이 특송을 했습니다. ~~~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 울려 퍼지는 찬양을 들으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따뜻한 가정과 아름다운 교회를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삶 공부를 하는데, 삶 공부가 있는 기간은 저에게 약간 무리가 될 정도로 피곤한 기간입니다. 저는 평상시 월요일에 쉬는 대신 목요일에 쉬는데, 월요일에 쉬게 되면 일주일 내내 쫓겨 다니는 형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삶 공부 기간에는 목요일에도 오전 클래스와 오후 클래스를 오픈합니다.

 

어제 목요일, 새벽예배 부터 시작한 하루, 삶 공부 숙제 검사하고, 오전 클래스를 마치고, 오후에는 조금 휴식을 취해야하는데, 미국의 시온영락교회에서 온 반가운 가족과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고, 밤 클래스까지 마쳤습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얼른 잠을 자야 내일 새벽예배에 지장이 없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우리 교회 자녀는 아닌데 중학교 2학년 여자 아이 하나가 복잡한 가족 문제 때문에 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싱글청년의 S.O.S. 전화였습니다. 우선 교회로 함께 오라고 이야기하고, 아내와 함께 다시 옷을 챙겨 입고 교회에서 이 아이를 만났습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잘 타일러서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를 안심시켜 주고, 여러 가지 가능한 상황을 함께 대화하면서 설명해 주고, 아이의 엄마께 제가 전화를 드려볼 생각으로 전화를 해도 되겠는지 물어 보았는데, 이 아이가 엄마랑 문자 대화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딸에게 보낸 문자 메세지의 모습을 보고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 아이가 지금 돌아갈 집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설득하여 함께 경찰서를 찾았고, 경찰에게 인계를 하고 난 뒤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빨리 자야 새벽예배를 제대로 섬길 수 있을 텐데..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심란합니다.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새벽 4, 조금만 더 자자 한 것이 하마터면 새벽예배 설교를 펑크낼 뻔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중학교 2학년 딸이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엄마가 이렇게까지 반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엄마가 갱년기를 통과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남편까지 힘들게 하는 상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너무하다. 엄마의 문자 메세지가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이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지난 목요일 밤 만난 그 아이를 떠올리며, 비록 때로 티격태격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는 평범하고 따뜻한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속상하고 힘들 때 마음껏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목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가 더 풍성한 추수감사절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제가 새벽예배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사연이 있을 거야 생각하시며, 바로 개인기도의 시간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석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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