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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의 딜레마

박세근 1 1016

방법의 다원주의(pluralism)!!

방법의 노예!!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패로 이끌게 됨!!

 

 

자본주의 체제의 문화속에서 살다보면 글로벌적인 다양한 물질 컨텐츠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영향력으로 과거에는 절대적 입장을 고수했던 원칙들도 시대의 필요를

따라서 상대적인 수용의 아량이 오히려 절대적 입장의 원칙보다 더 양심적이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게 한다.

 

20131130235714.jpg

 

몇년전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결혼장소로 허락이 되었던

미국의 대표하는 워싱턴 국립 대성당의 사진!

방법의 다원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한 사례가 아닌지?

 

 

 

예전에 불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올렸던 글이 있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비판의견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독선적인 뉘양스로 불쾌감이

몰려올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불쾌감의 원인은 다원주의에 대한 옹호적 관점 때문이다.

양보할수 없는 부분에 선을 그어놓고 상호간에 침범의 범위를

존중해서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때 그져 아름답고 평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지향하는 다원주의의 원칙이 전쟁보다는 평화를

유지시켜주는 아름다운 명분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요하고

안정된 가운데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부인하게 될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 온것은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다는"...(마태목음10장)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꾸 종교적 페러다임과 타협해 가다보니

타 종교를 자극해서 오히려 고요하고 안정된 삶에 피해를 유발할수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 내부에서도 다원주의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이

양심의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을수도 있다.

 

기독교 내부에서 이런말을 하게되면 보수적인 바운더리를 벗어나서

마치 이슬람 극단주의 신앙과 비슷한 뉘양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밑바탕으로 하다보면

다음의 두가지 판단으로 지금의 이러한 생각들이 그져

비판받을지도 모르겠다.

 

1. 그리스도인이 너무 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모양을 나타내지는 않았는가?

 

2. 타 종교의 어느 훌륭한 분의 선한 영향력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좀 본을 받고 그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위의 두 질문이 지향하는 방향은 다원주의적 관점이 가지는 정당성이다.

 

그 정당성의 근거는 바로 어떤 방법이 최선이냐?...라는 관점!!

 

 

 

그래서...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기도하기보다는 방법을 찾는일에

그 우선순위를 쉽게 바꿀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최선의 방법을 찾는것이 결코

비양심적이라고 할수는 없기 때문에...

 

구약시대 모세의 이야기를 보면 아주 인상적이다.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를

받을수 있는 이유는...

 

모세는 기도하는 것과 방법을 찾는것의 우선순위를

절대로 바꾸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족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쉽게 생각할수 있는

양심적 선택이란 기도보다는 방법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지도자를 원망할만한

명분을 찾을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방법을 찾기위한 노력이 결코 비양심적이라고 할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때는 그져 딜레마가 있을 뿐!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다루어 나가는 일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수있는 것은 결코 나타날수 없다.

 

누군가는 원망을 할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100% 만족을 보장하는 지도자는 인간 역사이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고로 지도자의 역량의 50%는 말빨이라고 했던가?

민중을 감동시키는 멋진 언변의 설득능력!!!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똑뿌러지게 말을 못하는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다.

말주변 머리가 없는 사람~~모세!

 

왜냐하면...

그는 그러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기도할것이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그 밋션을

모세는 기적적으로 완벽히 성공시켰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기도보다 방법을 찾는 것은 이기적인것이고

비양심적인 것이다.

 

방법을 찾겠다는 의도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인데

그것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의지와 다를바 없기 때문에...

 

그래서 바리세인들이 실패를 했다.

 

인간의 삶이 일반 동물들과 다를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물들은 정해진 본능데로만 행동을 한다.

즉, 예측된 행동의 범위를 절대로 못벗어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결코 인간 스스로가 정한 방법대로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 또는 가이드라인 조차도 제대로 지켜낼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심을 배반할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할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 인간은 방법으로 결코 살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게 될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관심이 하나님이 아닌 방법에 놓이게 되면

그 결과가 결코 성공적일수 없다.

 

타 종교의 훌륭한 양심을 이루었던 영적 지도자들!

그 방법이 결코 흠잡을때 없었지만...

결국 그들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깨닫지는 못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함)

 

왜냐하면 어떠한 푯대가 만드는 방법이냐가

결국 그들의 결과를 결정했을 뿐이기 때문에...

 

사실 그들이 고수했던 방법은 이미 타종교에서도

유사하게 하고 있는 일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진리는 하나님 한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빌려서 자기가 만든 우상에 대입해서 그져 했을뿐이기에... 

 

그래서 예수님을 깨달을 수 없는 그 과정이라고

하는것은 그져 무가치할 뿐이다.

 

왜 성경이 아닌 다른 책들을 보고 그러한 방법들에

권위를 두려고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가 궁굼해하고 우리가 의심하게 되는 그것들에 대해서

얼마든지 우리 수준에서 이해할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마음에 이미 보내주시지 않으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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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하나님께 기도할때...

 

"하나님! 법정스님의 삶이 감동이 됩니다!"

"법정스님을 닮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굉장히 속상해 하실것 같은 느낌이 몰려온다..

 

1 Comments
이경준목사 2013.12.02 04:29  
세근 형제, 요즈음 어디에 있냐? 주일에 못 본 지 오래 되었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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