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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수고만 해라, 내가 낫게 해 주겠다.

강환구 11 1777

너는 수고만해라, 내가 낫게 해 주겠다.

 

지난 추석연휴는 유난히 길어 그 긴 연휴를 아무 계획없이 마냥 보내기가 아까워

그 중 삼일 정도는 청평쪽에 있는 기도원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추석 전 날 멀리 김제에서 전화가 왔다.

그 곳 기도원으로 와서 몇일 머무르며 휴일을 보내고 가라는 일종의 초청 형식의 전갈이었다.

명절 연휴에 귀성객으로 지방에 내려가는 일은 지금껏 처음있는 일이고 그것도 기도원에서 보내는 일 또한 처음이었다.

김제 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분이 차를 대기시키고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길을 달리다보니 잠시 후 조그마한 기도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낯설지만 포근한 분위기의 기도원이다. 조금 후 원장님이 다가와 반갑게 손을 내미신다.

 

사년 전 서울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 키는 자그마하시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다.

올 해 아흔세살이시다. 자식과 손자 합쳐 세 명을 목회자의 길로 가게 하신 교육자시며 늘 기도하는 분이시다.

기도원 여기저기 그 권사님의 손때 묻은 긴 세월의 흔적들이 보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책을 필사한 노트가 몇 권인지 모를 정도로 쌓여 있고,

오늘도 성경을 옮겨 쓴 깨알 같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 온다.

지금 그 연세에 안경도 안쓰고 글을 읽고 쓰신다니 놀랄 일이다.

주일 목사님이 설교때 봉독한 말씀구절을 한 주간 필사하며 모두 암기하고서야 다음 주일에 교회로 가신다는 권사님의 말씀,

목사님의 잘잘못을 결코 자신이 판단하면 안되며 무조건 순종하라는 말씀,

목사님과 교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것으로 드려야 한다는 말씀,

이웃이 무엇을 가지고 있던 간에 자기 집 보리쌀 한 됫박 보다 값지게 또한 크게 보지도 말고 탐내지도 말라는 말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내 이익을 취하지 않겠다고 기도원 팻말 하나도 한사코 걸어 놓지 않으시는 권사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웃들을 전도해서 한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교회를 다니게 할 정도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지극하시다.

권사님이 다니시는 그 교회가 어딘지 모르지만 참 아름다운 교회일 것라는 생각이 든다.

찬송과 기도로 예배를 보고 잠시 긴 여정을 푼다.

 

그 사이에 권사님은 기도원 주변 텃밭에 심겨진 참깨를 낫으로 베고 어느새 단을 묶어 가지런히 세워 놓으셨다.

주변을 둘러보니 논밭의 끝이 수평선에 맞닿였다.

과수원에는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있고 대추며 감, 온갖 과일들과 곡식들이 가을걷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 농사의 한가운데에 권사님의 손이 멈출 날이 없다.

손수 그 많은 농사를 짖고 계신다.

 

한참 만에 들어오시더니 안수해 주신다고 나에게 누우라고 자리를 정해 주신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신다.

“너는 수고 만 해라, 내가 낫게 해 주겠다 하셨지요.”

“이게 누구요, 아버지의 아들 아니쟎유. 그러니 아버지가 고쳐 주셔야죠. 누가 고쳐줄람요.”

그러면서 어깨, 팔과 다리를 주무르신다. 그런가 싶더니 어느새 발가락을 잡고 좌우로 상하로 휘저으신다.

어찌나 세게 힘을 주고 흔드는지 숨도 못쉴 지경이었다.

몇차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댄다.

그 후로도 세 차례나 권사님으로부터 뜨겁게 안수 기도를 받았다.

 

그 발가락은 나의 손이 접근하는 것을 아직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매번 뒤틀어지고 뻣뻣해지기 일쑤인 발가락, 손으로 만지면 터질 것 같은 가녀린 피부, 심장에서 가장 먼거리에

있어서인지 피가 공급되지 않아 온통 살이 짖무르고 피부가 시커멓게 괴사되었을 때에도 나는 참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다 죽은 나를 다시 살려 주셨는데 다리 정도야 어떻든 상관하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다리를 지금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 것을 느낀다.

 

주먹도 쥐어지지 않고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이 정상으로 점차 회복되어 갔고,

성경필사가 끝나는 날 약지 손가락에 믿음으로 약속한 반지가 끼워진지 닷새 만에,

생각에도 없었던 이 곳으로 오게 하고, 또 아흔 세살의 노(老) 권사님의 손의 수고를 통해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밀려오는 감사함에 너무 기뻐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다.

 

“너는 수고만 해라, 내가 낫게 해 주겠다.”

하나님은 나에게 손을 내밀기를 원하셨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주님을 향해 아낌없이 손을 내밀었는지...

어떨결에 손을 내 밀었었어도 그 때마다 내가 한 것입니다 하고 나의 공로만을 내세우기에 급급했었고,

나갈때는 두주먹에 담아가고 돌아 올 때는 빈손으로 와야함에도 언제나 더 가져 오려고 욕심부렸던 나를 돌아본다.

 

하나님께 빈 손을 맡긴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안효열집사님이 오늘 육의 몸을 한줌 흙으로 돌리고

하나님께로 갔다.

모든 이의 마음을 슬픔으로 적셔 놓고 갔다.

남은 자들을 위해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위로하고 두손 모아 기도하던 집사님은 나와 모든 이의 곁을 떠났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청소년 사역을 위해 병든 몸을 마다하지 않고 혼심의 힘을 다했다.

멀리 미국까지 날아가서도 아픔을 뒤로하고 손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집사님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지금껏 그 손의 수고로움에 얼마나 많은 영혼을 주님께서 치료해 주셨을까.

그 손의 수고로움이 주님 이 땅에 오실 때까지 땅끝까지 이어져 복음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향략에 물들어가는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뿌리내리고 자라서 소망의 닻이 되어질 것이며,

후손에게는 변치않는 사랑의 밑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가 수확되는 기쁨을 맛보리라.

 

유옥형집사님과 아들 서형이, 딸 혜주 가족 모두가 아픔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길 기도한다.

비지니스에서 선교여행에서 때로는 가족여행에서 함께 했던 짧은 만남들, 그러나 깊은 믿음의 동반자였던

고인을 천국 문까지 배웅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2010. 10. 04

강환구 Sam, Kang

11 Comments
김성호 2010.10.05 17:41  
집사님 글은 이상하게 읽을때마다 가슴이 짠하는 감동이 있네요~  치료하시는 주님을 저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윤금희 2010.10.05 22:00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려는 주님을 거부하지 않는 지혜와 겸손을 구합니다.
이경준목사 2010.10.06 01:15  
늘 오팔년 개띠라고 주장하곤 했는데, 안효열 집사가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났습니다.
안수 기도도 받으셨으니, 이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김동수 2010.10.06 02:08  
권사님의 기도가 단순하면서도 깊고 능력있게 느껴집니다.  힘과 위로가 되는 글 감사하고 기도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담대히 바라봅니다.
김경민 2010.10.06 08:53  
너는 수고만 해라 내가 낫게 해 주겠다. 할렐루야!!!
박진효 2010.10.07 03:20  
천국에 인재가 부족하신지 귀한 분들이 너무 서둘러 가시네여.
집사님!건강 하세요 성경필사 100번 꼭!채우시구여...이제 2번째시니 시간이 걸리시겠네여. 응원열씸 할께요~~^^건강 하시구 사랑 합니다....
서미란 2010.10.07 04:39  
집사님! 이 감동을 어찌 표현하나요? 치료하시는 하나님 은혜 누리실 줄 믿습니다~^^*
배재현 2010.10.07 21:04  
기도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곳입니다 기도원에서 많은체험을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난곳 이기도 합니다 집사님도 좋은 체험이라  믿습니다
내주위에서 친근한이름이 하나씩 지워집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이야기겠지요
안효열집사기족에 진정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전승만 2010.10.08 18:07  
집사님 뵐 때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감동과 도전이 됩니다 늘 마음으로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집사님 화이팅 입니다. !!
김도윤 2010.10.08 20:53  
감동을 주시고..깨우침을 주시는 글 고맙습니다.!  안집사님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홍수진 2010.10.10 20:49  
집사님... 건강하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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