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과 반지에게 한 약속
손가락과 반지에게 한 약속
성경필사 여행을 다녀왔다.
5개월 전 어느 날 문득 다운교회 홈피에서 성경필사를 클릭하고나서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올 해 안으로 성경일독 필사를 한 번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나를 도와줄 열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또한 배낭에는 3년 동안 서랍에 감추어져 있던 소중한 반지 하나를 챙겨 넣었다.
당장이라도 손가락에 끼우고 가고 싶지만 지금은 새끼 손가락에도 들어가질 않는다.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이 반지가 약지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 본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사실 이 열 친구들과 여행을 함께 하기에는 상당한 모험이 따라야 했다.
모두가 하나 같이 다리도 못 구부리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발바닥이 퉁퉁 부어 있고 각자 따로따로 걷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서로 붙어 있는 상태라서 각자가 맡은 일을 따로따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4월6일 여행지를 향해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우려 되는 일이 바로 일어났다.
역시나 서서 걸어 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모두 무릎으로 기어 다닐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우선 키보드에 있는 모음과 자음에 색상테이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오려 붙이는 응급조치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무릎과 발등으로 나마 한 발 한 발 딴 곳으로 가지 않고 제 길로 다니게 되었다.
가끔 딴 길로 들어서면 다른 친구들이 서로 도와서 제 길로 가도록 부추겨 준다.
첫 여행지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신비로운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보며 하루를 접는다.
다음날 아침 어제 다소 무리해서일까 친구들이 모두 앓아 눕는다.
어떤 친구는 다리에 마비가 와서 꼼짝없이 누워서 식은 땀만 흘려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계속하여 이어 진다.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오른쪽 엄지 친구는 벌써 커다란 물집이 생겼다.
임시 조치로 붕대를 감아 준다.
그렇게 조심하여 다니지만 수없이 걸리며 걸핏하면 뻣뻣해지는 다리를 감싸고 주저 앉는다.
이러다 열 친구 모두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 온다.
상태가 악화되어 오히려 여행을 떠나지 않음만 못할 것 같은 생각에도 사로 잡힌다.
그래도 여행하는 목적과 여행 끝에 올 선물을 기대하며 끙끙 앓고 있는 친구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준다.
8월 초순 그러니까 여행을 떠난지 넉 달쯤 되었을까
이제 제법 바로 서서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조금 단단해진 발바닥으로 이 곳 저 곳을 마구 건너 뛰며 다닌다.
다소 힘은 없어 접쳐지고 쉽게 넘어지지만 약지와 새끼 손가락도 제법 각자 할 일을 한다.
색상테이프를 조심스레 떼어 낸다.
모두가 대견스럽다.
아침에 눈을 뜨면 꼼짝 못하고 오전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지만 서로 격려하며 만져주고 용기를 주는 모습을 볼 때
이번 여행에서 정말 값진 무언가를 얻을 것 같다.
짐이 가벼워야 되고 좋은 친구와 동행하며 돌아갈 집이 있어야 멋진 여행이 된다는 목사님의 말씀 또한 이 열 친구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가져다 준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1)
속히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과 함께 요한계시록을 끝맺는 말씀을 끝으로 모든 여행을 접는다.
가냘프고 상처 투성이였던 열 친구와 함께 한 여행길...
지금껏 서로에게 느껴 보지 못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과 사랑을 다섯 달 남짓한 이번 여행길에서 찾는 기쁨을 맛 보았다.
그 사랑과 용기가 있었기에 예정일보다 석 달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하되 스스로를 겸비하라" 하신 말씀이 이번 여행길에서 나침반이었고 키워드가 되었다.
인생길(路)은 스스로(路)인 것 같다.
모두가 스스로 각자의 길을 간다.
스스로의 길을 자기 혼자 가다보면 곧 목이 곧아 자만하고 욕심많고 절제하지 못하여 멸망의 길(路)로 갔던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래서 [스(God)+스(oneself)로(路)]겸비하며 가라신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스스로 가는 길이라 깨닫는다.
오늘 유난히 날씨가 좋다.
제 모습을 찾은 열 친구들의 벌린 손 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쏟아져 들어 온다.
모두가 한마음 되어 함께 한 열손가락을 대표해서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태양빛에 샛노랗게 물드려진다.
솜사탕처럼 떠 있는 뭉게 구름을 두 손으로 살포시 주어 담고 또 다른 여행길로 접어든다.
2010. 9. 16
강환구 Sam, Kang
이번 여행길에서 저와 열 친구들이 지치지 않고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 성경필사를 함께 해 주신 여러 분이 계신 덕분이었습니다.
때로는 도전하는 명분을, 때로는 묵묵히 응원하고 계심을 마음으로 느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금껏 함께 한 분들과 헤어지는 아쉬움 또한 큽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끝까지 용기를 북돋아 주신 형제 자매님께,
또한 이런 좋은 툴을 만들어 주신 홈페이지 관리자님께도 모두모두 감사를 드립니다.
엊저녁에는 벽에 붙은 모기 한 마리를 보란듯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놓치기 일쑤이지만 그 만큼 팔을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넓어졌습니다.
아픔에 어느덧 익숙해 졌지만 회복되어지는 기쁨 또한 많기에 같이 나누는 은혜의 시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