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자녀만 축복받는 자리일까요?
선교사 자녀만 축복받는 자리일까요?
양xx, 신xx 선교사님의 큰아들 양진모의 글을 읽으면서 그는 왜 선교사 자녀가 축복의 자리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목사님 아들들인 명철이, 현철이 역시 목사 자녀도 축복의 자리라고 고백하지 않을까요?
그럼 선교사, 목사 자녀라는 자리가 축복의 자리일까요?
그건 아닌 거 같고.. 왜냐하면 모든 선교사 자녀들이, 모든 목사 자녀들이 그렇게 고백하지는 않으니까요.
경제학에서 정의한 행복지수를 통해서 한번 살펴보려고요.
행복지수 = a * 충족시킨 욕구의 양 / 충족시키려는 욕구의 양 ; a는 양의 상수
이 단순한 방정식에서 행복지수를 크게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분자를 크게 하려고,
의,식,주에 우리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나 이런걸로 우리는 조금도 더 행복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자원의 양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걸로 충족할 수 있는 욕구의 양 역시 유한하다. 즉 분자는 유한하다.
그런데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는 무한하다. 즉 분모가 무한대라는 얘기다.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나누면 뭐가 되지? 답은 0 이다. 이건 수학적 진리다.
우리가 합리적인 소비를 해서 새로운 그 무엇을 소유하고 소비할 때마다 느낀 행복은 심리적 착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분자를 크게해도 여전히 분모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행복지수는 결국 0 이다.
행복지수를 0 이 되지 않게 하려면 우선 분모인 무한대를 유한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 분모가 유한이 되면 자원의 양이 아무리 적어도 0 보다 높은 행복의 수준을 누릴 수 있다
과연 어떻게 분모를 무한대에서 유한한 크기로 제한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고있다. 모든 물질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걸... 바울 사도의 고백을 들어보자.
빌립보서 4장 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진리라는 걸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분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분모를 유한으로는 제한해 놓았기 때문에 적어도 행복지수는 0보다 크다. 그뿐만아니라 그들은 알고 있다
어떻게하면 행복지수를 크게 할 수 있는지를...
여기에 또 하나의 수학적 진리가 숨어있다.
분모를 1/2로 줄이면 행복지수는 2배가 되고, 1/3로 줄이면 3배가 된다는...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삶을 보면서 진리를 터득해 가는게 아닐까?
선교사 자녀라는 자리가 축복이 아니라 선교사로 헌신한 부모의 자녀가 된 게 축복이고
그것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분의 말씀해 순종하면서 사는 삶을 사는 부모의 자녀이기 때문에
더 축복이 아닐까?
매주 분모를 무한대에서 유한한 크기로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분모를 줄여 행복지수를 크게하는 방법을 말로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시는 울 목사님 부부,
같이한 시간이 얼마되지 않아서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솔직 담백한 간증과 글로써
그들의 삶을 살짝살짝 공개해 주시는 양승봉,신경희 선교사님 부부를 통해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신나고 행복한 삶인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