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 섰더니..
뒤 돌아 섰더니..
6시 조금 넘어 아들이 살며시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불 속을 비집고 몸을 누인다.
「굿모닝 파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신호이다.
오늘은 간단히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분주하게 출근준비하는 아들을 뒤로하며 사우나탕으로 향한다.
40년전 조성된 재래시장 끝자락 얼마전 불탄 흔적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있고
그 건물에 대중목욕탕이란 간판이 달려있는 곳을 지나친다.
워낙 낡고 허름한 건물에 있는터라 오가는 사이 자주 봤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이용하지 않은 곳이다.
이 곳을 지나면 신기루 같은 고층 아파트와 새로 조성된 빌딩숲이 나온다.
50미터만 더 가면 된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건물 3층에 있는 사우나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띤다.
날씨가 쌀쌀해서일까 몇걸음 지나치던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뒤돌아 서서 그 건물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그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우선 카운터 계산을 마치고 들어가니
전혀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은 여탕 또 한쪽은 남탕으로 문이 두개다.
남탕문을 열고 들어선다.
옷장 열쇠를 찾으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결국 못찾고
한 쪽 구석에 있는 이발소로 가서 여쭌다.
신발장에 신을 넣고 그 문에 꽂혀 있는 열쇠로 열면된다고 말한다.
옷을 벗는데 참 춥다.
실내 온도가 얼마면 이렇게 추울까하고 주변을 살피니
둥그런 전기 스토브 한대가 윗쪽 한칸만 꺼질듯이 불을 밝히고 있다.
탕안으로 들어서니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나이든 사람들이 서너명 앉아 있다.
이 곳이 문을 연 후로 지금껏 변함없이 이용한 사람들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 곳을 찾으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내 분위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실내등은 꼭 켜있어야 될 서너 곳만 희미한 가로등처럼 밝히고 있다.
샤워기 옆 비눗갑 위에는 닳고 닳은 얇은 비누가 덩그렇게 놓여있다.
얼마나 단단한지 거품도 나지 않는다.
사워기도 몇군데가 고장나 뜯겨져 있다.
엉거추춤 서있는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디디고 서있는 돌바닥 군데군데가 종유석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것을 본 것이다.
다리에 쥐가 날것 같다.
샤워를 하는둥 마는둥 마치고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자리를 옮긴다.
앉아서 씻는 곳에 있는 샤워기를 들어본다.
손잡이만 멀쩡하고 온통 새까맣다.
기름때인지 곰팡인지 구별이 안된다.
흘러나오는 물만 새것이고 모두가 낡아 있다.
씻기를 포기하고 온탕물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보낸다.
온수 냉수를 공급하는 커다란 수도꼭지가 검붉은 모습으로 누워있다.
천정에는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석순이 고드름처럼 길게 달려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탕 속의 새파란 조각타일이
물과 어우러져 더욱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유령의 집에 들어 온 것 같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내가 이 아침 발길을 돌려 여기로 왔단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처도 어쩔 수 없이 불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처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몸을 씻으러 왔다가 온 몸에 소름만 가득 돋아났다.
비누칠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온다.
아들이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왔다.
세면장에 들어가 면도하고 머리감고 몸에 물을 끼엊는다.
. . .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황당한 일을 겪고 난 후
와이셔츠 다림질하며..
교회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서서 다시 그 목욕탕을 지나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그 곳 앞에서 발걸음이 또 멈춰진다.
50여년 동안 닦이지 않은 더러운 찌꺼기가 내 안에도 있는 것 같다.
겉만 깨끗할 뿐..
속에는 아직도 더러운 피가 흐른다.
혈관도 종유석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 하얗게 막히고 굳어져 있는게 틀림없다.
바로 조금 전에 목욕탕에서 보고 느낀 모든 더러운 것들이
그동안 나를 병들게 하고
그로인해 힘들어 했던 것과 별반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잃었던 몸과 영혼을
다시 한 번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그냥 지나치려 했던..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잠시나마 멈춰 서서 보게하신 주님을 송축하며..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2010. 3. 21
강환구 Sam,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