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평창
나의 고향은 오늘 하루종일 뉴스에서 도배되다시피한 평창입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종부리라는 곳입니다.
저는 평창국민학교, 평창 중학교, 평창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위해 도시로 오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오늘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평창의 오리지널 사운드, 원초적 발음을 들으시려면 저와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하하^^
제 말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한번은 천호동 농협에 돈 찾으러 간적이 있습니다.
창구 여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저, 돈찾으러 왔는데요?"
길지도 않았습니다. 아주 짤막한 그 한마디였습니다.
여직원은 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뭐 문제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그 여직원이 하는 말,
"귀순하셨어요?"
저 잘못하면 북에서 내려온 귀순자, 혹은 간첩으로 몰릴뻔 했습니다.
아마 평창 말투가 북한 억양과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곤했습니다.
내가 살던 평창 종부리는 국민학교 4학년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6학년이 되어서야 다리가 놓여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배를 타고 학교 다녔지요. 집에서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그 배에 다 탈 수가 없어서 돌아오는 배를 타야 하는데 늦어서 선생님께 맞을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도로 포장은 대학교 2학년 마친 후에나 시작 되었습니다. 내가 휴학하고 고향 친구들과 그포장도로 길가를 정리하는 소위 '나라시'를 했거든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면서 죽었다는 이승복이 살던 곳도 평창입니다.
아마 태백산맥 줄기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험산준령이 평창이기에 그리로 들어왔겠지요.
시인 김동환이 쓴 "산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라는 시가 교과서에 실렸을 때 꼭 내 맘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산넘어 누가 사는지 외부 세계에 대한 궁금한 것이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사방을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왔을 때 고향이 평창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이렇던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고속철도가 놓여지고 올림픽을 위한 최첨단 시설이 들어선다니...
인구 5만명도 안되는 평창군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변화가 온다니 격세지감입니다.
나중에 고속철도 만들어지면 만추의 가을에 우리 시골집 밤털러 갑시다!
오늘따라 이사야 40장4,5절 말씀이 유난히 묵상되네요.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세상일이란 참 모를일입니다. 오늘 모든 것이 절망 같아도 내일은 평창같은 날도 있지요.
더구나 주안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며 추억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