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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사랑방

자기부인!

박세근 5 1050
요즘 성경읽기를 하면서 새롭게 배우게 되는것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읽어 나가다가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뭔가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간 이해하고 있었던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깨닫게 해주신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 믿으면서 항상 마음속에 부담으로 작용했던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가족과 부모와 자식들 버려야 하고...
 
부자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것도
어찌보면 같은 맥락인것 같습니다.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과감히 버려야만 한다는...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사실 말이 쉽지...
왠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잘 안되는 부분이 아닐지?....
 
예전에 선교회에 있을때 정말 무식할 정도로
자기부인하는 연습을 많이 했던것 같습니다.
 
연습을 열심히 해도...
의자가 약해질때면 쉽게 무너지게 되고...
그래서 나는 왜이럴까...하면서 자아비판하고...
주여~죽여주시옵소서!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이런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서 다시 이부분을 읽다보니...
마음이 다시금 무거워 지려 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부분을 강력하게 강조하는 바울서신은
가급적 읽기 싫어지고...
 
성경보기가 두렵고...
 
자기부인을 잘 못하는 너는 제자의 자격이 없다!!
라는 음성이 막 들려오는것 같고...
 
죄책감의 원조로 작용하는 이 말씀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해주시는 것 같아서...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자기부인을 강조하셨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그동안 자기부인에 대해서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이해하고 있었던것을 부자청년과 대화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의 십계명을 모두 따르는 제자로서 우수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였지만, 한가지 부족한 점은 자신의 부와 재산에
대해서는 마음에 집착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기 위해서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그 집착하는 부분은 모두 다른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가 될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 될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족과 친척, 자녀가 될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부인하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자신의 모든것을
부인하라는 의미는 아니셨던것 같습니다.
 
집착하게 만드는 그것에 대해서만 버리라고 하신것인데...
 
뭔가에 집착하게 되면
그 집착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다보니, 정작 하나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은 바라보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생각 속에만
빠지게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경험할 수 없게되기 때문에...
 
그래서 꼭 한가지 상황에 대해서만 기대를 품고
그 외의 다른 상황들에 대해서는 원망을 하게되고...
 
그랬던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이유는
 나의 눈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자기부인을 말씀하신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깝게 되게 해주시기 위해서 자기부인 하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무조건 자기부인을 하면 하나님의 엄청난 복이
나에게 임하게 될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또 이것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자기부인을 강요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는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부인하는 행위와 실적에 대해서만
뿌듯해하려고 했던 것이 너무나 어린 생각이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법정스님을 좇아서 무소유 도를 닦는것이
차라리 나았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상황이 오던 나쁜 상황이 오던 집착함이 없이
마음에 평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래서 부자(집착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것이고...
 
그러나,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바로 그 가능할 수 있는 근거가...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때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것이
유일한 길이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혼자 잘나서 자기부인(집착 않하기)을 잘한것이 아니고,
바로 그러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고백은 단순히 알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할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됩니다.
 
그동안 바울 사도에게 "당신 참 잘났수!" 하면서 미워 했었는데...
신앙 생활에 하도 심적인 부담을 주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이제는 저도 바울사도 처럼 고백할 수 있을것이라는 비젼을
내심 가져보게 됩니다...
5 Comments
황해연 2010.08.11 05:29  
바울사도를 "당신 참 났났수"하고 미워할수 있었던 마음도 그만큼의 믿음의 생활이었지 싶은걸요. 그리고 축하드려요 바울과 같은 비젼이 생겼음을...
김동수 2010.08.11 18:58  
예수님의 팔복강해, 제자도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행하려다가 좌절감을 느끼는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때 "우리가  할수 있습니다" 대답했던 이스라엘이 그들의 의지와 규율로 지키려다가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리는 오류에 빠졌음을 배웁니다.  팔복강해,제자도,자기부인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자와 받아들이 자가 어떤 동기로 실행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다른 율법적 규율로 자신을 통제함으로 억눌린 삶을 살게 될때 우리는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게 됩니다.  바울의 고백 "나의 나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속에 모든 정답이 있는것 같습니다.  주의영이 계신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고 성령안에서 승리합시다.  저는 이제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는 고백보다는 "나의 믿음 없는것을 도와 주소서"라는 고백이 좋게 느껴집니다.  강압에 의한 훈련은 단기간의 변화와 효과는 볼수있지만 장기적으로 볼때는 부작용이 훨씬 심한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이라는 목사님 말씀처럼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주의 영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 끝까지 제자답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됩시다.  화이팅!!!
김영미 2010.08.30 21:34  
저는 아브라함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주일 학교에 다녔는데 그때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믿음의 조상으로 거대한 산처럼, 넘을 수없는 산처럼 느껴졌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적을까? 그런데 30세가 지나서
김영미 2010.08.30 21:42  
알게 됐어요. 언약을 세우시고 끈임없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며, 기다리신 거대한 하나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그래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나봐요. 내가 무엇을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니
김영미 2010.08.30 21:45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것.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실하심에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