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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이 필요한 시기

김동수 0 969

요즘 한국교회에 대해 쓴소리하는 글이 많은데 사탄이나 이단들의 주장이라고 매도하면서

정직하게 돌아봐야할 쓴소리를 외면하는 교회들도 많은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그런 글이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ㅋㅋㅋ

 

현재 교회생활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저의 신앙생활에 비추어보면

반성하고 잘못배운것이 참 많다는것을 느낍니다.

 

교회 사역박람회를 앞두고 이런 글을 올려야하나 망설여지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쏠려진 봉사를 위해 균형을 잃어버릴 지체들을 위해

십시일반 나누어 봉사하면 훨씬 도움이 될것 같기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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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밖에 모르는 예수쟁이들
반성이 필요한 교회 중심 생활

입력 : 2011년 02월 16일 (수) 19:59:25 / 최종편집 : 2011년 02월 16일 (수) 22:27:24 [조회수 : 2430] 신성남btn_sendmail.gifcanavillage@yahoo.com newsdaybox_dn.gif


주일 아침이 되면, 먼저 9시 교회 학교 예배에 참석합니다. 중고등부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학교 다음은 11시 대예배입니다. 예배 후에는 바로 성가대 연습이 있습니다. 그 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 청년부 집회에 참석합니다. 조별 모임까지 다 끝나면 4시 30분 정도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7시 저녁 예배 시간이 다소 어중간합니다. 그래서 대개는 교회에서 나머지 오후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예배에 참석합니다. 이렇게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주일 하루 온종일을 교회에서 보낸 셈입니다. 그 외에도 틈이 나는 대로 수요 예배, 금요 기도회, 토요 모임, 새벽 기도회, 구역 예배 등에 참석합니다. 물론 평일에는 직장에 나가서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를 해야 합니다. 

필자가 잘 아는 어느 청년의 실제 교회 생활을 잠시 열거해 보았습니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교회 내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일 아침 교회 학교부터 시작해서 대예배, 성가대 연습, 부서별 오후 집회, 그리고 저녁 예배까지 교회 내의 여러 모임에 참석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몸이 거의 녹초가 됩니다. 식사 준비나 설거지 등 교회 허드렛일도 모두 교인들의 몫입니다. 게다가 장로나 권사 등 주요 직분자들은 목사님의 눈총을 의식해 주일 새벽 기도회를 거르기도 불편합니다. 

흔히 목회가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신도들도 결코 쉽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일에는 직장이나 가사일로 시달리고, 주일마저 제대로 쉬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니 교인들이 평일에 사회에서 제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도리어 기적입니다. 아마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교회 신도들보다 더 심하게 한 주일 내내 돌림방을 당하는 교인들은 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비신자들 중에는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너무 피곤하게 해서 겁난다'고 말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 내의 집회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어 갈수록 더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대형 교회는 매일 새벽 기도회에 모이는 운동까지 한다니 문제가 더욱 복잡합니다. 하여튼 한국교회의 열심은 정말 알아주어야 합니다.



절제가 필요한 교회 중심 생활 

필자도 한때는 '교회 중심 생활'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편안하고 행복했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이 너무 기뻤고, 믿음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또한 존경할 만한 목회자들과 친절한 성도들이 마냥 좋았습니다. 친구의 인도로 처음 출석한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사랑을 배웠고, 그리고 성경 이야기 속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회 중심 생활에도 큰 절제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그 이유는 신자들 삶의 중심이 예배당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가정, 직장, 학교, 지역 사회 등 '인생의 전 영역'에 균형이 있게 자리해야 옳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도들은 매우 성공적인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에브리데이 크리스천'이 되는 데에는 크게 실패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매우 경건하고, 가정에서는 약간 경건하나, 정작 사회에서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이중생활을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서는 모두 다 독실하신 장로, 권사, 집사 그리고 교사이신데, 평일에 직장이나 학교나 지역사회에서는 이분들이 다 어디에 숨어 계시는지 그 향기를 느끼기 힘듭니다. 

오히려 평소에 참으로 야박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어떤 직장 상사가 한참 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 장로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부패와 탐욕으로 큰 비난을 받는 어느 유명 인사 역시 장로라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란 적도 있습니다. 더구나 직장에서 점심때마다 꼬박꼬박 기도를 잘하는 동료 집사가 매우 이기적이며 인색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제사장처럼 경건하신 목사님이 막상 가정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교회 내에서 경건한 신자 노릇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마치 온실에서 화초를 키우는 일과 비슷합니다. 믿음 좋은 모습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정작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고, 생각과 생각이 부딪치고, 그리고 이익과 이익이 부딪치는 세상 속에서 신자다운 삶을 사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대형화 추구' 현상의 이면에도 바로 이 '교회 중심 생활'을 잘못 오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분들은 신도들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실천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는 일군'이 되기를 바라고 또한 그렇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당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우선일까요, 아니면 가정이 우선입니까. 어떤 목회자들은 쉬운 이야기도 매우 어렵게 돌려서 말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절한 균형이 있는 것이고, 양자택일의 극단적인 경우라면 가정을 돌보는 것이 우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보다 교회에 열성인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본래 이단과 사이비 교단의 주요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위 보수 교단에 속하는 교회들에서조차 이런 생활을 은근히 따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평생 교회 일에만 매달려 매주 세월을 보내게 하고, 실제 가정과 사회에는 별 유익과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미성숙한 기독교인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수가 거의 천만 명에 이르렀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신도들의 교회 경력은 계속 높아지지만, 속사람이 별로 새로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새신자일 때나 집사나 장로가 된 지금이나, 신앙적 미자립 상태로 변함없이 그저 담임목사의 모유만을 찾는 발육 부진의 신앙생활에 머무르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이런 사람들이 직분자라고 양복 입고 무게를 잡으며 목사의 시녀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성장하더라도, 교인은 별로 성장하지 못한 곳이 바로 지금의 한국교회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고, 돈 내고, 건물 짓고, 선교하고, 구제하고, 그리고 봉사하는 일을 목이 터져라 강조하여 교회 성장에 큰 재미를 보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같은 순간에 가정과 직장과 사회 속에서 신자들의 삶이 서서히 망가지며 고통 받고 있음을 크게 간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귀족 목사님들의 배부르고 오만한 행태를 보면, 도대체 신도들의 그런 고통에 제대로 관심이나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성숙한 신자로 사는 일 

한국교회는 예배당에 모이는 일에 성공하고 있으나, 흩어지는 일에서 크게 실패하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모여 지지고 볶는 일에는 이미 경지에 이르렀으나, 지역사회에 소망을 주고 유익을 주는 일에서는 큰 낭패를 보고 있습니다. 각자 삶의 영역에 흩어져 신자답게 사는 일에서 그만 쓴잔을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탈세한 장로 사장이 욕을 먹고, 직장에서 이기적인 집사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사 시어머니와 집사 며느리가 서로 반목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누구도 그리 쉽게 자유롭지 못합니다. 필자 역시 과거 신자답지 못하게 처신한 행동이 문득 떠오를 때면, 밤에 이불 속에서도 혼자 얼굴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틈만 나면 잘난 척하고, 남을 가르치려만 들고, 부동산 투기에 동조하고, 사치 풍조에 어울리고, 불의한 이익에 관대하고, 가난한 친척과 이웃에 무심하고, 직장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부하 직원에게 거칠고, 그리고 가정에서 완고한 것이 우리들의 한심한 모습입니다. 

요즘 교회와 교인들은 넘치는데, 참된 제자들을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신자다운 삶'을 사는 데에 실패한 결과입니다. 수십 년 동안 시계추처럼 교회만 왕래하면 뭐합니까. 사람이 좀 달라져야지요. 허구한 날 성경을 배우고 연구만 하면 뭐합니까. 나가서 실천을 해야지요. 신도들의 생활을 진정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는 구태의연한 교회 중심 생활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아울러 가정과 직장과 사회 속에서 신자다운 삶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목회자들부터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교인 수에 집착하고 교회 성장에 촉각을 세우기 전에, 먼저 교인들이 어디에서든 독립적인 신앙 인격을 갖추고 신자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자기 권리를 철저히 챙기는 이 영악한 시대에,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조금 손해를 보고 살면 좋겠습니다. 가정의 화평을 위해서라면, 내 권리와 편리를 크게 양보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희생이 없는 화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따뜻한 시어머니와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 남편, 아내, 형제, 그리고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도 전도에 욕심부리기 전에, 우선 남들을 세워 주고 도와주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진급이 좀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가능하면 남보다 조금 더 나누어 주고, 조금 덜 가져야 합니다. 시장에서도 너무 깎지 말고 제값을 주고 사면 좋겠습니다. 남들은 일부러 구제도 하는데, 영세한 상인들에게 박절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신자들은 세상에서 다소 어수룩해 보이고, 바보가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모두들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챙기는 빡빡한 세상에서 신자들만이라도 좀 윤활유가 되고 향유가 되면 좋지 않을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헌금을 많이 한들 무슨 영적 유익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삭개오처럼 자기 것을 비우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신자가 되어야 

한국교회의 참된 성공은 큰 건물을 짓거나 많은 예배당을 늘이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하는 유명 목사들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속해서 장로 대통령이 나오고, 장로 기업인들이 많이 늘어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시급히 필요한 것은 교회는 물론, 가정과 사회 속에서 제자 된 삶을 구체적으로 성실히 실천하는 '경건한 신자'들이 늘어나는 일입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전심으로 힘써야 할 일은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교인의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는 교회밖에 모르는 예수쟁이, 복만 밝히는 예수쟁이, 겉과 속이 다른 예수쟁이, 강자들 편에만 서는 예수쟁이, 부와 권력을 탐하는 예수쟁이, 타 종교에 무례한 예수쟁이, 이웃에 냉담한 예수쟁이, 그리고 사회 정의를 외면하는 예수쟁이 생활을 필히 청산해야 합니다. 

아울러 '헤롯 성전'을 폐하신 예수님처럼, 필요하다면 우리도 '예배당'이라는 높은 울타리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만 거룩한 척 위선하지 말고, 세상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며 소통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욕을 하든 말든 예배당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유아독존하는 신자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갈수록 어두워지는 이 세대에 예배당 속에 안주하는 신도들은 단지 빛을 잃은 등불이며, 맛을 잃은 소금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자다운 삶을 사는 데 무수한 실패를 했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망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손해보고 사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용기를 내어, 기필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겠다는 거룩한 다짐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어찌하든 제자답게 한번 바르게 살아 보자고, 때로는 잠을 설쳐 가며 기도하고 고심하는 진정한 예수쟁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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