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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리알 까기

강환구 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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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리알 까기

메추리알 까는 것 참 쉽다.

탁자 위에 살짝만 내리쳐도 쉽게 껍질이 부서진다.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궁굴려도 되고..

아니면 엄지와 검지 만으로도 쉽게 부서진다.

그렇게 갈라진 껍질을 손가락으로 벗기기만 하면 된다.

땅콩껍질 까는 것처럼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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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손쉬운 메추리알 껍질 벗기는 일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 녹녹치가 않았었다.

 

어제 저녁 시장에 들러 메추리알 두 판을 사왔다.

오늘 아침에 장조림을 만들기로 하고

밑간해 놓은 돼지고기 안심을 두어 시간동안 푹 익혀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잘 익혀진 수육을 먹기 좋게 찢어 놓고

메추리알을 끓는 물에 삶는다.

표고버섯이며 홍고추, 생강, 당근 편 썰고, 마늘을 다지는 칼질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그 옛날 부엌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칼질 소리처럼 다정하고 정겹다.

음식 냄새 때문인지 칼질 소리 때문인지 아들이 살며시 문을 열고 나온다.

「굿 모닝~ 하이 파파~ 오~스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사랑스런 아들과 함께하는 참 기분 좋은 아침이다.

 

체에 받쳐서 물기를 뺀 메추리알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본다.

살짝 금이 간 껍질을 손가락으로 벗겨본다.

그다지 아프지 않다.

「파파~ 헬프 유~?」

아들이 옆으로 다가와서 메추리알 까는 일을 거든다.

 

요 앞전까지만 해도 메추리알을 벗기는데 두 가지 도구가 필요했다.

그 한 가지는 포크요, 나머지는 이쑤시개였다.

왼 손에 잡은 포크로 메추리알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고..

오른손의 이쑤시개로 껍질을 벗긴다.

우스꽝스럽지만 이 방법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갈라진 메추리알 껍질에 손가락이 닿는 날이면

예리한 칼날에 베인 것처럼 심한 통증과 함께 저절로 입이 딱 벌어지기 때문이다.

. . .

98년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그렇게 몸이 망가져갔다.

암세포를 죽이려고 투약되는 항암제는 내 몸 전부를 닥치는 대로 휘졌고 다녔다.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손가락조차도 희생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손톱이 비닐처럼 얇아졌다.

손끝의 지문도 점점 옅어지더니 며칠이 지나자 흔적 없이 사라졌다.

풍선처럼 얇아지고 부풀어 있던 손바닥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갈라졌다.

단단한 물건의 모서리를 만질라치면 기절할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란다.

심지어 옷에 붙어있는 단추라고 쉽사리 만질 수 없다.

손바닥끼리 마주치지도 못한다.

 

너무 아파 힘들었을 때이다.

예배드리러 교회로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특히 주일 아침 예배시간이 되면 병실 침대 한 켠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하루속히 병이 치유되어 걷게 되고, 아픈 손이 회복되면 성경책을 가슴에 꼭 안고 가리라..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1년여 만에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새롭게 바뀐 표준새번역 성경책을 샀다.

한 쪽에 끈이 달려 있는 가방을 구해 그 안에 성경책을 넣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갔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 여남은 걸음도 채 걷기 무섭게 반대편 팔로 옮겨야 했지만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손과 손목의 힘만으로는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팔에다 가방끈을 감아 끼우고

가슴으로 안았는데도 안고 있는 팔이 힘없이 내려와 몇 번인가 땅바닥에 성경책을 떨어뜨렸다.

업친데 겹친 격으로 허리도 굽혀지지 않으니 다른 사람 도움을 받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언젠가 같이 걷게 된 집사님 한 분이 그런 나를 보고 성경책 안가지고 와도 된다고..

스크린에 다 나온다고 말한다.

참 고마운 말이다.

그 말 한마디에 지금까지의 고통이 코끝을 찡하게 하고 달아난다.

가끔 또 다른 많은 분들이 그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거리에서도..

교회 계단에서도..

어떤 집사님 한 분은 내 손에서 가방을 달라더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신 앞뒤로 번갈아가며 쓰다듬는다.

그 손놀림이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 되어 아픈 마음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어디 하나 떨어뜨릴 수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있음을 느꼈다.

 

골짜기에 찾아 오셔서 마른 뼈에 살을 붙이고 생기를 불어 넣어 살리시고

고통과 슬픔에서 건져주신 주님과 같이 걷는다.

가방은 천근만근 무거웠으나 말씀의 생명책은 두 손을 오가며 새털처럼 가볍게 춤을 춘다.

. . .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에게 손이란 아주 소중한 도구를 주셨다.

글씨를 쓰며, 그림을 그리며,

음식을 만들고 또 그것을 입에 넣고..

사람들과 반가움을 표현하고, 물건을 들어 나르고..

손의 역할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내 취미는 쇠붙이며 돌이며 목재 등을 깎고 다듬는 일이다.

한마디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나무를 다루는 것이 좋다.

우선 부드러운 질감이 좋고

나무만이 가지고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좋다.

그리고 그 특유의 내음이 좋다.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고 젊었을 때 조각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나님은 손끝에 또 다른 눈도 달아 주셨다.

그래서 그 일들을 하면서도 나는 장갑이나 보호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장갑은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촉감도 사라지게 해 어두움을 가져온다.

 

내 집 주방에는 장갑이 없다.

빨간 고무장갑이며 일회용 장갑들..

훌륭한 도우미들이지만 손맛을 빼앗기기 싫어서 갖춰놓지 않는다.

손톱에 김치 국물 빨갛게 물들어도 김치가 숨을 토해내는 것을 만져보는 게 좋다.

나물을 무칠 때도 손가락 사이를 들락날락하며 간질거리는 느낌이 좋다.

 

장갑을 사용해서 메추리알을 까왔더라면

오늘 아침

작지만 큰 기쁨으로 다가온 짜릿한 손맛을 느껴보진 못했을 것이다.

 

작고도 여리지만..

찜이면 찜, 조림이면 조림..

늘 묵묵히 식재료의 일부분으로 우리 집 영양의 보고 역할을 한 메추리알..

늘 약방의 감초마냥 매번 조연 역할만 시켜왔던 녀석에게

오늘은 특별 캐스팅해서 주인공의 자리에 앉혀야겠다.

 

장조림으로 아들과 함께한 아침식사

그 손맛이 봄의 향기에 묻어 되살아나는 아침을 맞는다.

참 기분 좋은 아침이다.

 

( 오늘 아침 10개월 만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며칠 전에 두 번에 걸쳐 정밀 촬영한 결과를 살펴보신 의사선생님이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기에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검사항목을 천천히 살핀 후 그제서 웃으면서 나를 보시더군요.

“아무 탈 없네요. 좋아요. 약도 필요 없겠고.. 가끔 놀러 오세요...”

그러면서 “이제 도망가지 마세요” 당부(?)의 말씀도 했습니다.

어찌나 기뻤는지요.

매일매일 좋아지고 있었지만 한참 힘들고 아플 때는 혹시나 하고 조금은 걱정되었었거든요.

지금에서야 밝히는 사실이지만,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고 난 후 일방적으로 치료를 거부했었어요. 그 아픔을 못 이겼었거든요. 살아났기에 그나마 지금 말 할 수 있답니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고..

늘 기도해 주시는 분들을 떠올리며 감사했습니다.)

 

2010. 3. 26

강환구 Sam,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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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이종규 2010.03.30 00:19  
변함없이 항상 따뜻한 격려와 미소를 잃지 않으심을 보면서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을 생각케 합니다. 
최혜영 2010.03.27 10:24  
집사님 글 읽고나니 입안가득 메추리알의 맛과 향취가 감도는게 한접시 뚝딱 해치운 느낌입니다.
제가 매일 아무 느낌없이 하고 있는 일상의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일깨워 주신 집사님!!!
마니 마니 감사드리구요. 애교만점 매너만점 아드님 사진 올려 주셔서 잘보았읍니다.
참한 처자들이 줄서는 소리 들리시죠^^
 
이송남 2010.03.27 10:36  
하나님 감사합니다. 집사님과 더 오래도록 교제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작년에 구역모임을 통해서 집사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집사님을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집사님을 알게 됐는데 제 소개는 못하고 인사만(꾸벅) 했습니다. 저번주에 집사님과 인사 나누고 다음 주에는 '집사님과  점심 같이 먹어야지'하고 생각했습니다. 집사님의 장조림 레시피 멋지네요. 제가 반찬 해드리고 싶었는데 저보다 요리를 더 잘 하시는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그리고 아드님이 붕어빵이시네요! 어쩜 이렇게 똑같이 생기셨을까? 따님도 보고싶네요.~~~^^ 낼 모레 뵙겠습니다. 아참, 콩돌이, 콩순이 밥 잊지 않을께요.저번주에 잊고 가서 얼마나 죄송했는지~~ㅜㅜ 안녕히 주무세요.^^
김영미 2010.03.27 10:40  
아! 이런실수 남편 이름으로 글이 올라 갔네요. 저희 남편이 주향한 찬양대 지휘자예요. 낼 모레 얘기 많이 나눠요^^
김성호 2010.03.27 17:27  
힘겹고 어려운 고통의 시기를 잘 인내하시며 지나신 집사님
글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집니다.
이윤경 2010.03.27 19:03  
와우~!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쓰세요.
집사님 글을 읽으면 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고 메말랐던 제 마음이 촉촉히 젖어들어요. 머리속에 다이아몬드 같은 단단함, 금과 같은 정결함이 떠올라요.
저도 일회용장갑, 고무장갑 없애고 싶은 충동이 들고, 그 시간 많이 잡아먹는 메추리알도 까고 싶어요. 하지만 자제할래요. 제가 싫증을 금방 내거든요.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장혜란 2010.03.27 19:39  
하나님의 넓은 사랑처럼 아드님께 주시는 맛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 사랑 집사님통해 많이 배우게 되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배재현 2010.03.27 22:28  
병이다치료되었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집사님이 항암주사를 다 맞으신후에 병원 치료를 거부하셨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점차몸상태가 좋아지는것에 감사하였지만 한구석에 걱정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의 섬세하시고 인간미가 넘치는 말이 참으로 좋습니다
음식솜씨는 7성급호텔주방장보다 훨씬 나은솜씨는 익히알고 있습니다만
메추리알 요리가 참으로 입맛다셔집니다
양석민 2010.03.27 23:17  
몸이 완쾌되시어 정말 좋습니다. 언제나 강건하시고 주님의 귀한 가정 제사장으로 든든하게 가정을 지켜주시고 교회에서도 더욱 기쁨이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
서미란 2010.03.29 17:35  
두 분 모습이 정말 행복해보여요^^*
집사님 글에서는 진실함이 감동으로 넘쳐나요
주님 은혜의 자리에 계심을 축하드리고 더욱 건강하게 기쁨과 감사 나누는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김윤 2010.03.29 19:19  
저랑 제 딸이 지난주에 쪼끔 아파서 나눔터에 결석을 했는데 집사님의 이런 좋은 글이 있어서 다시 발걸음 하게 하네요... 집사님 저도 손으로 만드는 거 좋아해요... 언제 알려주세요... 아님 아예 이경준 목사님이랑 저희 함 핸드메이드 사업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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