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며느리의 고백
갑자기 저희 시어머님이 떠오릅니다.
장녀이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그다지 살갑게 친정어머니와 잔정을 나누지 못했었습니다.
부산에서는 결혼식 며칠 전 시댁에 음식을 해서 보내는데 그 음식을 받으시면서 시어머니께서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이 음식 장만하시면서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신다면서...
그리곤 전화를 하셨어요.
"사돈, 딸 시집 보내면서 마음이 얼마나 그렇겠습니까? 내가 딸 같이 잘 할 테니 너무 염려마이소. "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일로 운다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상이 적으니 어쩌니, 해오는 것이
적니.. (음식을-' 상받는다'라고 합니다.) 이런 일로 속상해 하는 친구들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집오고 처음 맞이하는 시아버님 생신상 준비하며 밥을 태웠는데, 웃으시더라구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탄내가 난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니고, 내가 밥을 태웠네. " 라고 하시고,
어떤 음식이 맛나다고 하면 "그거는 며느리가 했지." 라고 해주시던 어머니..그때 부터 어머니가 좋았습니다.
2번째 생신 때도 밥을 태웠는데도 웃어주셨고, 튀김을 한다고 부엌을 밀가루 천지로 만드는 것을 보시고,
우스워죽겠다는 표정으로 깔깔 웃으시더니 "니가 할머니를 닮았네. 할머니가 꼭 그렇게 어지르면서 음식하던데,
손주며느리가 할머니랑 잘 만났다. " 하셨지요.
어머니 생신날 선물을 해드리려고 하니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다른 시어머니들은 돈 버는 며느리가 사주는
비싼 선물을 바란다고 하던데..어머니는 정말로 거절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약해드시라고 보약 한 재 값을 호주머니에 넣어드렸는데 (절대 안받으셔서 강제로 찔러넣었습니다)
돌아서시며 눈이 빨개지시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평생 시어머니 봉양에 남편 섬기고, 아들 셋 키우셨지만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가 약을 지어 준 것은 처음이라시며 눈물이 핑 ~~
어쩐지 아침에 해 드린 보잘것 없는 미역국에도 고마워서 말문이 막히시던 어머니셨거든요.
갓 태어난 딸 아이를 부산에 맡기고 주말마다 내려갔는데, 주일 아침 일어나서 밥을 하려고 하면 말리시며
"밥하고 설거지 그런거는 내가 해도 된다. 그냥 예령이나 실컷 보고 가라." 하시는데
너무 감사하고 그 마음의 넒음에 감동되어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저도 표현이 서툰 며느리라서...
그 이후로도 저에게 베풀어 주신 시어머니의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몇 시간은 혼자 떠들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남편이 미울 때도 시어머니 때문에 미움이 사라질 정도니까요.
교회간다는 말에 충격으로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시던 어머니,
예수 믿으면 가족도 부모도 몰라보는 줄 아시는 어머니는 그 염려 때문에 뭐라 말도 못하고 우셨어요.
방에 들어간 저는 ,불 끄고 이불 속에서 울고 계시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믿어서 부모님께 더 잘하고 동생들에게 더 잘해야죠. 안그러면 예수를 왜 믿겠어요, 어머니"
"니가 아직은 몰라서 그렇다. 교회에 미치면 형제고 뭐고 없더라."
"어머니, 말로 하면 뭐하겠습니까? 그냥 앞으로 보세요. 제가 더 잘하나, 못하나, 어머니는 제 마음 모르세요?"
그 후 어머니와 저는 더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저희가 교회 가는 것도 인정하십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음식점에 교회다니는 분들이 오시기도 하는데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깔끔하게 먹고, 늘 겸손한 태도라고 칭찬하십니다. ^^
언젠간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꿈꿉니다.
어머님이 보고싶어서 길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께서 아버님과 함께 예수님을 믿으시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저도 어머님께서 혹시 병이 드시면(그런 일이 안생기고 건강하신 것이 제일입니다만)
꼭 제 손으로 간병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