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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먼저냐? 은혜가 먼저냐?

박세근 2 945
예수님을 믿고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주 혼돈을
일으켜왔던 문제중에 하나이다.
 
정말 애매하다...
누군가가 이런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 정리해 주면 좋겠다.
 
예전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 강조했던 부분은 의지였던것 같다.
 
신앙에서 일정 부분의 책임은 내가 투자하는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그래서, 신앙을 위한 훈련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말씀,기도,교제,증거 수례바퀴삶의 결과가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서 어쩌면 다운공동체가
나타나게 됬는지도 모르겠다.
 
이 수례바퀴 방법은 결코 잘못된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그 수례바퀴를 돌리는 모티브가 엉뚱했기 때문에...
 
의지라는 모티브로 수례바퀴를 10여년이 넘도록 돌려봤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목적인 자유함은 누릴수 없었다.
자유함을 상실한 신앙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런데, 이 수례바퀴 삶의 방법의 모티브를 의지에서
은혜로 바꿔봤다.
 
그랬더니, 자유함을 누리더라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가 말씀을 실천해서
또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알수 있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쉽게 착각하기를 단순히 말씀을 실천하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만
오해하게 된다.
 
하루에 정해진 성경읽기, 전도, 그리스도인들과 교제, 기도를 꾸준히
실천하는데도 왜 성경의 그 약속들이 내가 생각했던데로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의 궁굼증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나도 그 궁굼증에 대해서 답변할 말이 없다.
 
왜?
 
나도 잘 모르니까?
 
그래서 점점 말씀을 실천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 말씀을 실천해서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고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할때만 영향력이
나타나는 신앙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열쇠는 의지가 아니라 은혜이다.
 
은혜가 만들어내는 의지가 성령의 방법인 것이다.
 
육신이 연약하여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신 말씀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의지에서 시작했는지, 아니면 은혜에서 시작했는지....
나타나는 실천이나 행위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얼마든지 결과를
뒤집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은혜속에서 강할 때 영적인 재생산은 자연스럽게 나타날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때 바리새인들과 엄청난 트러블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의 신앙의 시작이 의지가
아니라 은혜라는 것 때문이였다.
 
내 의지로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다.
 
말씀안에 거하여야만 하는 이유!
쉬지않고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르는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2 Comments
진교일 2011.11.16 20:25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의지와 은혜의 하모니...이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성현이가 아빠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지만 마음을 보고 기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아들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김동수 2011.11.16 22:13  
의지를 강조한다는것이 문제된다기 보다 율법주의에 기초한 종교행위로 의로워 지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제자도의 가르침이 율법화되어서 그렇게 살지않으면 정죄와 판단을 당하는 것이지요.  율법과 은혜는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지,정,의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한데, 성령의 감동없이 규율과 인간의 통제와 관리시스템으로 영적성장을 이루려고 할때 신앙의 자유는 사라지고 뭔가를 해야만 하는 의무와 강요된 종교행위 그리고 사역의 열매가 믿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무언가를 함으로써, 또는 하지 않음으로써 인정과 은혜를 얻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에 속한 삶이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너무도 사랑하고 좋아하기에 자발적으로 하는것은 은혜에 속한 삶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하고 거기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자하는 욕망이 있는것 같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될때 그런 삶의 동기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력한지를 깨닫고 주님의 은혜없이는 아무것도 할수없음을 고백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에 속한 사람들이 은혜는 잃어버리고 의무에 매여 자기의를 키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