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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누릴때 인생을 누리게 되는 현상

박세근 3 1115

나도 현재 그러고 있지만...

장례식장이나 응급실과 같이 죽음의 분위기가 있는 곳에

나는 나의 아이를 절대로 데리고 갈 마음이 없었다.

 

그 이유는 죽음이란 것이 아주 불행하고 불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울고 통곡하는 어두움의 분위기에 나의 아이가 정서적으로

잘못 영향력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고...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내가 아직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은 두렵고 무섭고 어두운 일이다.

심지어 어떤 종교들도 죽음을 긍정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우리에게 인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세상사람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육신의 죽음은 구원의 완성을 나타내고 있고,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산다는 것!!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 약속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그 다음의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사람의 힘으로 의지로 믿기 어렵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지금의 삶속에서

그 부활의 기쁨을 누리도록 허락하고 있다.

 

천국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는 증거는

우리가 죽음을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것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기고 있다는 것!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죽음으로부터 자유함 곧 평안이

천국이 우리 마음에 이미 임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과정이 아닌

설레임과 갈망의 과정이 되어야 할것 같다.

 

세상사람들에게 장례식은 두려움과 통곡과 이세상에 대한

한(恨)을 푸념하는 기회일 뿐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즐거움의 기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결과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일로 생각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비정상적인 인생의 과정을 격게 되는것 같다.

 

빛과 소금의 역활이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나타나게 하는 원동력은

죽음에 대한 자유함을 누릴때만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 죽음으로부터의 자유함을 망각하고 있을때

과연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고 볼수 있는 것인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통해서 얻게될 매력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의 잘먹고 잘살아 보이는 인생의 모양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받아 들인다면,

만약에 우리의 인생이 지옥같아 보일경우 그래도 그들이 복음을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복음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달려있는듯 하다.

 

예수님을 마음에 이미받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아직

자유함이 없을때, 우리의 입에서 삶에서 나오는 복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공동체를 이루며,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목적과 이유를

부여하려 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의 끝인 죽음을 기억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인 부활을 바라고, 그것을 우리 마음에

다시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매일 매일 죽음을 기억하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린 인생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계속적으로 확인하게 되고,

우리가 정하고 고집했던 불완전한 인생의 목표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된다.

이미 정해진 결과를 확신할 때, 그 과정 속에는 자유함이 있다.

 

나의 아이가 혹은 내가 도와 주어야 할 그 사람이

죽음을 누릴줄 모르는 가운데, 인생의 목표를 찾는다고 할 때

과연 나는 무엇으로 조언하며 그 인생을 도울 수 있겠는가?

 

돕는다는 것!

죽음(복음)에 대한 올바른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경험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죽음을 매일의 삶속에서 누릴때

우리의 인생과정은 아름다운 열매의 과정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복음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좋은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복음의 본질(죽음으로부터 자유를 누림)을

우리 각자가 누리는 것은 그것 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듯하다.

 

죽음을 누린다는 것은 복음의 가치를 누리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아주 특별한 축복이란

생각을 해본게 된다.

3 Comments
김동수 2011.11.03 22:16  
음매  기죽어^^  죽음을 초월한 신앙....그건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한것 같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와 역사를 통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이고,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놀라운 은혜 같습니다.
전승만 2011.11.04 17:46  
우리 신앙이 사실은 주님의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늘 우리 몸에 지고 산다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버쩍 들 때가 있습니다. 날마다 이를 새각하며 산다면 그것이 곧 기적일 것입니다. ~~ 
이동호 2011.11.16 10:10  
주변의 모든것을 버린다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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