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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신앙컬럼>

박세근 1 1025
아주 오래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례...
기독교라는 종교의 역사는 시작됬다.
 
기독교라는 종교적인 형식으로 정착되기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고통을 받아왔던것을
성경과 관련된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라는 종교로서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사회적 기능으로
인정받기까지 수고와 노력을 해왔던 많은 믿음의 조상들 덕에
지금 나는 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종교적인 형식으로 정착하면서 신앙생활은 보편적인 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예를들어...
항상 일요일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것!
 
보편적인 틀이 작용하면서, 보편적인 틀(프린스플)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의 문화와 비슷한 기독교 문화가 예수님과 관계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파의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이였는데..
기독교 문화로 합리화되면서 그 전파과정이 대중적으로
변신을 했다고 해야할까?
 
변신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린다.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경우 변신이라는 말은 멋지지만,
변신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돌연변이?
 
한번의 멋진 말빨과 한번의 멋진 설교로...
한번의 뜨거움으로...
 
거대한 인파들이 순식간에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것!
그 목회자가 거의 신적인 능력이 있어야만 당연시되는 분위기?
 
그래서 기독교를 선택한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그리스도인의 수가 결코 많아 졌다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전파되게 하신 원리는
절대로 대중적인 일방적인 영향력이 아닌 개인적인 접촉이기 때문에...
 
그리고 기독교 내부에서 그리스도인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대중적인 관점으로 복음전파가 그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목회자 조차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이 이제는 제법 나타나고 있을 정도이다.
 
대중적인 전파의 문화가 만들어낸 복음의 명분은 기복(期福)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한번에
마음을 얻어내게 하는 수단은 기복(期福)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뭔가 신비한 능력이 있어주면 좋겠지만...
그런것도 아니고...
 
기복(期福)에 근간을 둔 기독교 문화로 많은 사람들이 한때
기독교로 모여드는 기독교 boom의 시대가 열리기도 했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독교 문화가 그 나라를 정복했다는 것으로인해
기뻐하며 박수를 치셨을까?
 
예전에 바리세인들의 종교 문화에 의해 그 나라가 압도당했던
이스라엘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양을 나타냈던가?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세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영광스런 일인줄 알고 착각하고있는 많은
기독교 종교 위정자들에 의해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심각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나이많은 권사님들이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주여~하면서 외치는 기도가 내 자식들이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기독교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혀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점점 커지는 것을 위한 기도!
 
뭣때문에?!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러면 대형교회가 되어 부유한 교회생활을 할수 있어서?!
 
그러다 보니 전도의 동기가 우리교회에 많은 사람들을
출석시키는 것이 복음전하는 모양의 그림으로 많은
세상사람들이 그져 오해하게 되었다.
 
기복(期福)의 본질이 완젼히 삼천포로 빠져있는 상태!
 
그것이 대중적인 전파의 방법과 타협해 버린 기독교
문화의 열매인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바리세인들처럼 인간적인 방법을
따랐던 결과로 기독교의 대중문화는 그져 나타나 버린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때 자꾸 기독교 문화에 묻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할때가 많다.
 
예수님 믿으면 형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기복(期福)을 이용해서
복음 전파의 명분을 삼으려고 할때가 많다.
 
그래야 그들이 솔깃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생각하는
나의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짧은 생각때문에....
 
결국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왜곡시킨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또는 삯꾼이 될 뿐이다.
 
기복(期福)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다고 했던 이유는 내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진실되게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져 증명될 뿐!
 
하나님을 진실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는 그져 어렵고 부담스런 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
 
좁은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좁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을 꼭 받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으셨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만 받고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가는 과정이
없어도 인류의 구원이 무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왜 궂이 십자가의 수난의 과정을 허락하셨던 것일까?
 
그 이유는 당신의 자랑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12제자와 많은 의인들)에게
진정한 복(福)에 대한 보상은 이세상에 없고 하늘나라에 있음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였다는 것을 조금만 양심을 바로하고 생각해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일이다.
 
이 땅에서의 기복(期福)에 매이게한 기독교 대중문화!
 
그것이 진정한 하늘복을 바라보지 못하게 우리들의
눈과 귀를 지금도 계속해서 가리우고 있기 때문에
좁은문은 전혀 생각할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세상에서 뭔가 보상을 생각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옥이 될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결정하신
그 순간부터 사울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려나가야 할 올바른 그림은
기독교 대중문화가 그려내는 복(福)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타냈던 좁은문이 의도하는 복(福)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12제자의 사도행전과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뿐인것이다.
 
기독교의 흥망성쇠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파는 전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인 각 개인에게 그져 집중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사실 볼품없어 보이는 몇몇 그리스도인 때문에
그 그리스도인이 몸담고 있는 대형교회가 멸망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고 하는 가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좁은문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점점 악해만 가는 세상의 타락하는 가속도를 견제하는
일들이 그 얼마안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그져 가능해질 뿐!
 
좁은문으로 향해서 나아가기 전에 먼져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연약함의 문제들이 있다.
 
- 정욕의 노예!
- 돈의 노예!
- 보상과 자식의 노예!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자의 양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을 통해서 고백하게 하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수 있느니라."
 
아멘! 
1 Comments
김창희 2012.11.23 22:47  
항상 저에게 인내를 요구하시는군요. 읽으려니 헉헉...
좁은 문은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저는 성령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vip, 교인 모두에게... 성령의 음성과 나의 순종이 하나되어 내 삶을 가꾸어가고 싶네요. (롬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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