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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위안의 차이

박세근 0 1110

일종의 말장난 같지만...

한국말은 "아"다르고 "어"다르기 때문에...

 

위로와 위안이란 말이 영어에서는 공통되게 한단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comfort, consolation)

 

우리 말에서 위로와 위안의 단어가 사용되어지는 상황은 좀 차이가 있다.

 

위로한다는 말은 누군가와 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상황이고,

위안은 누군가와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나타는 상황이다.

 

위로한다...

위안을 삼다...

 

결과적으로 평안을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두가지가 의도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위로한다는 것은 인격적인 교감에 의해 나타난다.

나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상황에 대해서 인격적인 대화를

통해서 나에게 적절한 격려와 새로운 희망의 동기를 얻는 과정이다.

 

반면에 위안은 인격적인 교감이 아니다.

뭔가를 일방적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행함으로 나의 감정이 편안해 지는 것을 얻는 과정이다.

 

위로에는 이유(컨셉)가 존재한다.

그러나 위안에는 감정만이 존재한다.

 

위로가 나에게 나타난 원인은 내가 평안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깨닫거나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평안을 얻게되는것!

 

그러나 위안은 그져 느끼는 것이다.

깨닫는 것도 없고 새롭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칫 위로와 위안의 차이를 망각하게 될 경우

그 나타나는 모양이 완전히 달라질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꾸 타종교들 처럼 종교화 되어가다 보니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위로가 아닌 위안에 치중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의 위안을 얻기위해서 교회(church)를 나오거나...

나의 마음의 위안을 얻기위해서 절(temple)에 가는것이나...

 

위안의 동기력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의 감정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자꾸 모여야 하는 이유는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인격적인 사랑을 서로가 경험하고

그로 말미암는 새로운 동기력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두세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곳에 나도 있다고

말씀 하신바 있다.

 

바로 위로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나타나실 뿐이다.

 

교회 공동체는 출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좀더 인격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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