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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NEWS(3)

박세근 1 975

제2부 : 꼭 거짓말 같은 성경속의 이야기들에 대하여...

 

 

에덴동산,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 요나의 이야기 外......

 

 

성경을 읽다보면 그리스도인인 나조차 어쩌면 아직 불신하고

있을지도 모를 사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성령께서 믿음을 주셔서 믿을 뿐이라고...

근거를 논리에 두지않고 하나님께 두려고 하는 노력!

 

그렇다!

 

우리 머리로 생각하는 논리로 성경 해석의 근거를 두게되면

성경은 도저히 믿을수 있는 책이 될수가 없다.

 

그런데...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의 능력으로 그져 믿을뿐이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태도로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하기전에

먼져 우리 스스로의 양심을 통해서 확인을 해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절대양심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절대양심이라는 말은 꼭 그리스도인에게만 사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수 있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에 대한 강력한 심리적인 상태가 바로 절대양심을 의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코 동물처럼 자신의 동족을 죽이는 일로 마음에

거리낌을 느끼지 못할수가 없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

곧 절대양심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절대양심에 대한 막연한 반응이 샤머니즘, 토테미즘 같은

원시신앙의 모양을 만들어 냈을 뿐!

 

성경을 배제한 인류의 역사속에서 객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은 바로 인간의 본성은 절대양심(신)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인간 스스로가 그것(절대양심)에 그져 반응했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성경을 배제해놓고 인간의 머리로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일 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이 스스로 될수 있다고 하는 가설을

증명할 방법이 사실 인간의 차원에서는 그져 불가능할 뿐이다.

 

그것은 유능한 과학자라면 한결같이 주장하게되는 결론일 뿐이다.

인간의 머리로 가능한 최선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들이 만드는

차원의 단위를 그져 여러가지 형태로 조합할 줄 아는 것 이외에는

사실 더이상의 방법은 없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의 새로운 관계 내지는 조합으로 형성된

응용된 차원들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그져 기존 물질들과의

관계에서 얻어진 지구의 물질들의 응용이 이루어낸 파생의 현상일 뿐이다.

결국 지구가 없어지면 없어져 버릴 것들 뿐!

 

인간이 존재하도록 그 근간의 조건을 충족시켜준 이 세상이자

이 지구의 창조에는 결코 신이 연류되지 않았다는 가설을 증명할수

있는 방법이 사실은 없는 것이다.

 

성경을 어떻케든 배제해 보면서 그 근간을 해석해 보려고 하는

노력으로 대표적인 논리가 진화론이겠지만...

결코 진화론이 창조론의 좀 더 양심적인 논리 앞에서 끝까지

당당할수는 없을 뿐이다.

 

절대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하다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때 좀 허구스러운

사건과 이야기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절대양심에 대한

부분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접근이

좀 엉뚱한 해석을 유발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인간의 상식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덴동산이라든지, 노아의 방주, 요나의 사건등은

도저히 이해될수 없는 동화 이야기 수준으로만

그져 이해될 뿐이다.

 

그렇다면 좀 뒤집어서 생각을 해볼 필요도 있다.

진실된 논리란 내가 보는 관점에서만의 해석이 결코

올바른 진실이 될수 없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바라보는 것이

그져 당연한것이기 때문에...(일종의 방법적 회의라고나 할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본다고 했을때...

즉, 지구를 창조한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했을때...

 

인간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구라는 놀이터에서

다양한 차원놀이(과학)를 하고있는 모양이 마치 손바닥안에

개미 정도로 비유해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그져

개미같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손바닥 안에 개미같은 존재에게 내가 생각하는 고차원의

생각과 지혜와 지식을 내가 하는것만큼 똑같이 하도록

하게 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개미의 머리는 내 머리만큼 두뇌의 크기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자기 몸의 몇천배크기)

 

그러나 개미는 그져 개미일 뿐!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과 동등된 존재로 결코 만들지 않으셨다.

 

그런 개미같은 하찮은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에 있어서 과연 우리의 단순한 차원에서만 이해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기란 결코 쉽지않을 뿐이다.

 

이미 개미와 같은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알 방법은

사실 없는 것이다.

 

그런 개미같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실올아기 같은

창구가 하나 생겨 났다고 한다면...

 

그 실올아기 같은 창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하나님의 그 생각과 그 모든것을 이해하는 것은 도저히 개미의

머리로는 이해가 될 수 없다. 단지 그 존재하심에 대해서만

인지할수만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져 놀라운 기적일 뿐이다.

 

성경은 인간에게 실올아기 같은 창구일 뿐이다.

 

그것을 통해서 유일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진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실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실을

서로 대입해보면 절대양심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조금은 감이 오게 될 것이다.

 

그 절대양심을 사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영을 통해서

그져 깨달을 뿐이다.

 

에덴동산 사건, 소돔과 고모라 사건, 요나 사건...

그 외에 우리가 성경에서 접하게 되는 상식을 벗어난것 처럼

보이는 많은 사건들!!

 

그것은 인간의 상식에서 해석하라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것이 결코 아닌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의도가 어떠하신지를

보여주시는 실올아기 같은 희망의 기회일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어떠하심에 대해서 끊임없이

방향성을 주시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멸의 희망 그 자체인 것이다.

1 Comments
김동환 2013.01.11 20:16  
요즘 창세기를 통해서 다시금 창조,죄,홍수,소돔성에 대해서 읽고 있는데 ~ 참 은혜롭습니다. 죄가 있기전에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우리들보다 훨씬 더 많이 느끼고 알았다고 생각됩니다. 개미(동물)가 인간을 이해하는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것 같구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계시)들이 있구요. 절대양심은 헤겔이 주장했던 절대정신으로 보시는것인지?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쉬운방법으로 자신을 알리시어 죄로부터 회복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오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이겠지요. 글 덕분에 더욱 감동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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