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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사랑방

차별에 대한 오해

이영주 4 1200

좀 재미가 없는 것 같아 쓰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내가 묵상한 것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하나

갈릴리 호수의 거센 파도를 잔잔케 하신일,

거라사(가다라)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신 일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기에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주님이 고쳐 주신 거라사인의 이야기는 귀신에 붙들려서 비참하게 살던 한 인간에게 자유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 큰 위로를 준다.

 

그 고침받은 사람이 말했다. 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막:519)”

 

나는 이 말씀이 오랫동안 숙제처럼 맘속에 남아있었다.

왜 주님은 주님의 손으로 완전하게 치료하신 한 사람을, 치유받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자원하여 헌신하고 그토록 복음의 전선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겠다고 애원하는 이 사람을 매몰차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물리치셨을까?

 

귀신들렸던 전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신걸까?

그런 출신의 사람은 복음의 최전선으로 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런 사람을 더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하셔야 하지 않나?

 

세리와 어부출신만 뽑으시나?(물론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지만...)

아니 주님조차도 사람을 차별하시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나나 실망인가?

자기동네에 가서 낫게 된 것을 전파하라고 하는 말로 무마시시키시나?

그렇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왜 거절하셨을까?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태도에 대해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늘 주님을 다시한번 쳐다보게 되었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졌지만 시원한 답은 없었다.

이 사람의 경우, 고쳐 주신것은 감사한 일이고 놀라운 일임에 틀림 없다. 그정도만 해도 황송한 일이다.

 

그러나 치료후 주님이 취하신 태도, 그를 거절하신 것에 대해서 나는 상당히 실망했다.

 

아마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그 사건만 나오면 건성으로 지나쳤다.

 

그런데 얼마전 오늘 말씀과 유사한 누가복음 8장26-39 읽게 되었다.

누가복음 8장 27절과 39절을 읽을 때 두 구절이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그리고 그 오래된 숙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마을 출신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은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고, 무덤에서(눅8:27), 밤낮 소리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상하며(막5:5)...

 

이 각 단어들에서 풍기는 그의 삶을 보라! 한마디로 비참함이다.

그는 아주 오랜세월동안 기본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인간 이하의 삶을 살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 단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집에서 살지 않고...

그는 자기 집이 있었지만 그 집에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도 버림받았다.

오랜 세월동안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철저히 소외되었고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순간 묵상을 하며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치유 받았다고, 따라가겠다고 한다고 해서 주님이 “그래 너 참 훌륭한 결단을 했다. 지금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 또 복음 전하는데 너의 그 간증이 필요한데 잘 됐다. 얼마든지 따라와라!” 하고 무조건 받아 주셨다면...

주님은 오히려 얼마나 잔인한 분이신가?

 

그에게는 쉼이 필요한게 아닌가?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고 무덤에서 밤낮 소리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상하며 살던 그 사람,

그런 사람을 가족품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해서 쉼을 얻게 하는 것이 참 사랑이 아닌가?

 

정말 그랬다.

그는 복음의 현장으로 갈 사람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를 돌려 보내 그리운 가족의 품에서 사람답게 살게 해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다다르자 주님의 큰 뜻에 뭉클한 감동과 은혜가 몰려왔다.

 

복음의 전선으로 가야할 사람도 있지만 집으로 가서 쉬어야 할 사람도 있다는 것이...

 

본연의 사명을 잊고 그물을 가지고 옛 바닷가를 다시 찾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지난 3년간이나 나와 함께 했던 것, 배웠던 것을 다 까먹고 이짓하고 있냐는 질책보다 밤새 그물을 내려 배고프고 지친 그들을 위해 손수 고기를 굽고 조반을 준비하시던 주님(요한복음21:9-10)...

 

복음전할 사람의 절대 부족으로 인해 희어져 추수할 밭을 보며 추수할 일꾼이 너무 적어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그 주님, 그 주님이 복음의 시급성을 뒤로하고 각 사람을 살피시며 오늘같은 경우 복음의 전선으로 내 몰지 않으시고 먼저 쉼을 갖게 하신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고 배려였다.

 

나는 오늘 아침 전철 속에서 그런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 마음을 읽고 있다.

 

나는 오늘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능력의 주님 보다 한 인간을 소중히 보시는 너무도 휴머니즘 적이고 무한한 사랑의 주님을 보고있다.

이런 분이 내가 따를 분이라니... 얼마나 멋진 주님이신가?

 

또하나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저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한편으론 오늘날 이땅에 가정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생각한다.

우리 교회 가까운 홍대 앞은 거라사인의 땅이 되어버렸다.

거기 뿐이겠는가? 거라사인 처럼 배회하며 소리지르며 공허한 눈빛으로 밤낮을 헤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그들의 공허한 눈빛, 채울 수 없는 공허한 마음... 집이 있지만 그냥 집이지 가정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돌아갈 가정이 없다.

 

청소년 여러분 밤이 늦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어서 돌아갑시다!

어렸을 때에 밤 10 시 라디오에서 들었던 멘트는 청소년만 필요한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우리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주일 저녁 함께 찬양하고 말씀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과 아내, 우리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늘은 뭐라도 사들고 가서 가족과 함께 나누어야겠다.

4 Comments
박승훈 2011.07.19 19:4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장로님.
"우리 교회 가까운 홍대 앞은 거라사인의 땅이 되어버렸다." 이 부분 정말 와 닿았습니다...
강성광 2011.07.19 20:33  
장로님 다음에는 꼭 일본 한번 갑시다. 장로님 이런 말씀을 전하며 키타를 뜯으며 한 곡을 전하면 일본인의 굳어진 마음이 얼마나 녹아내리겠습니까? 글을 읽으며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 민찬이도 예수님께서 돌 봐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이 글 퍼갑니다. 
최선귀 2011.07.20 04:34  
어릴적 라디오방송에서 듣던 추억의 멘트,구구절절 감동의글 감사합니다.
우리주위의 거라사광인이 너무나 많은 혹탁한 현실을 일깨워줘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김동수 2011.07.20 07:36  
귀한 묵상 감사합니다.  거라사인을 집으로 보낸것은 결코 차별이 아닌 그를 향한 따뜻한 사랑이며 배려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제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안된다고 해석하면서 교회내에서 차별을 당연시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장로님 묵상을 들으니 주님은 그런 잔인하고 계산적이고 냉혹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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