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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와 시몬 베드로의 차이

이경준 목사 0 330

(차동엽 지음,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에서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유다의 슬픔을 이렇게 묵상해본다.
“나는 죄인입니다.”(마 27:4) 유다는 뉘우치며 고백했다.
“없었던 일로 합시다. 그건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을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들이 거절하자 유다는 절망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유다의 죽음은 애처롭다.
유다의 잘못은 배반보다도 자책에 있었다.
그는 ‘자아’의 늪에 갇혀 있었다.
그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의 죽음은 ‘스스로’가 초래한 비운이었다.


유다의 눈물은 그래서 더욱 처연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짐작하였겠지만, 우리의 출발점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라는 물 음의 답은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유다를 부를 때부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시종일관 그 에게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노선에 따라 그때그때 자신의 결정 을 내렸습니다. 삥땅치기도, 배반도, 후회도, 자책도, 급기야 절망도 자신의 자유가 선택하 는 대로 취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세 번 배반한 이후 그는 크게 뉘우 쳤습니다. 이후 그는 모든 자유를 반납하고 하나님 처분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심판 의 눈물너머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벌이 아닌 자비의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피의 밭’으로 가 아니라 기회의 벌판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악인과 선인의 전형적인 차이가 발견됩니다.

 

악인은 끝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모든 결정을 자신의 자유의지로만 내 립니다. 소통도 의논도 반납도 일절 없습니다. 바로 자유의지의 남용입니다.

 

이에 반하여 선인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하나님과 소통하며 사용합니다. 때로는 의논하 고 때로는 반납하면서 자유의지를 지혜롭게 운용합니다. 바로 자유의지의 조화로운 선용 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길과 선인의 길은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선택입니다.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단하는 순간 그 길이 갈리는 것입니다. 그조차도 일관 되고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변덕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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