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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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가정예배

이경준 목사 0 335

성경본문 : 누가복음 15:11-24
찬송가 : 384장(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대표기도 : 한 분을 지명하거나 인도자가 기도합니다.
설교내용 : 한 문단씩 돌아가면서 읽거나 한 사람이 읽고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늘 본문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 또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둘째 아들이 좀 되먹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사실 유산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주는 것인데, 아버지가 정정하게 살아있는데 유산을 달라는 것은 못된 일입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간 둘째 아들은 거기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탕진하였습니다. 품행이 그런 사람이었으니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대개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재산이 있을 때는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그 곁을 떠나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마침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끝내는 그 지방 주민의 집을 찾아가 들에서 돼지를 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허기가 진 그는 그제야 제 정신이 들어서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하며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되면, 아버지들은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하나는, 위의 아버지처럼 죽었던 아들을 찾은 심정으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버지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네가 까먹은 돈을 다시 벌기 전에는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마라.” 하는 아버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아버지를 원하십니까? 당연히 앞의 아버지일 것입니다. 물론 아들은 이전보다 더 효자가 되어서 아버지를 공경하고, 더욱 성실하게 일해서 탕진했던 돈 이상을 벌려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일단은 불쌍한 아들을 받아들이는 아버지가 정상적인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앞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어도 시원치 않은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화해의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삼으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뒤의 아버지처럼 많은 것들을 요구합니다. 선행을 하거나, 도를 닦거나, 고행을 하거나, 혹은 돈을 많이 바쳐야 받아주겠다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종교의 창시자나 이단의 교주도 우리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적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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