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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 = 애매함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이경준 목사 0 208

(저는 가정교회사역원 나눔터를 자주 들어가 봅니다. 그곳에서 지혜를 많이 얻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곳에 종종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지혜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성숙에 대해 최영기 목사님께서 지혜를 나누신 것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떤 분이 ‘성숙’을 ‘애매함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ability to live with ambiguity). 맞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어리든지 미숙할 때에는 흑백 논리에 지배를 받습니다. 옳든지 그르든지, 맞든지 틀리든지, 둘 중의 하나라야 합니다. 이러  한 흑백 논리에는 애매함과 불확실성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갈등이 없고 심리적으로 편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든지 한 쪽이 절대적으로 맞고 다른 쪽은 절대적으로 틀리는  경우는 적습니다. 보통은 양 쪽 다 일리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양면이 있는 법인데, 흑백 논리에 빠져서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무시할 때에 어려움과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경륜이 쌓이면서 양쪽을 다 보 게 되고,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럴 때 맛보게 되는 것이 심리적인 긴장감(tension)입니다.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수용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사역에도 이러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 토의가 되고 있 는 교회 본질 회복과 교회 성장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이 이러한 것입니다.
 
   이것 외에도 가정교회 사역 도처에서 긴장감은 발견됩니다. 이러한 긴장감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정교회 매뉴얼을 요구하지만, 이런 매뉴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존재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위임입니다. 

   가정교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을 신뢰하고 과감하게 목양권을 위임 해 주어야합니다. 이럴 때 평신도 목회자라는 자부심이 생기고 주도권을 쥐고 목양 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둘러서 위임하면 방치가 됩니다. 스스로 설만한 준 비가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위임을 했다가, 목자가 실패를 맛보고 목장 사역을 그만 두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얼마만큼이 위임이고, 얼마만큼이 방치인가? 이 경계선은 목자의 자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기에 매뉴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담임 목사가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긴장감은 양육에도 존재합니다. 

   VIP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아니하고 계속 섬겨주기만 하면 이들은 영적인 어린이로 머물게 됩니다. 제자를 만들라는 예수님의 대사명에 위배됩 니다. 그러나 이들을 지나치게 푸시하면, 낙망해서 주저앉거나 압박감을 느껴 교회 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긴장감이 생깁니다. 

 

   얼마만큼 기다려주고, 얼마만큼 푸시(push)하느냐? 여기에도 매뉴얼이 있을 수 없 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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