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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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안에서의 선택

이경준목사 0 209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에 대해서 휴스턴서울교회의 최영기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 누다보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무슨 이야 기를 할 때에, 최목사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나하고 생각이 똑같으냐?”고 말씀하실 때도 자주 있었습니다. 최목사님께서 교회 목회서신에 올리신 글을 볼 때에도, ‘어, 나 와 생각이 똑같으시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하셨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우리 교회 주보 목회서신에 그대로 옮겨 놓곤 했습니다.
오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권을 준 다음에 그 권한을 빼앗으면 아이들을 노엽게 한다는 말을, 제가 자주 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최목사님은 그것을 ‘울타 리 안에서의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글로 정리된 것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3-4대가 모여 살았기 때문에 자녀 교육을 따로 시키기 않아도 되었습니 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가 열리면서 자 녀들을 의도적으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의 자녀 교육은 강압적이었습니다. “어른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야!” “너, 엄마 말 안 들을래?” 그러나 지금 이런 방법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도 통하지 않습 니다.
 
요즈음 자녀 교육 원칙이 있다면, ‘하자는 대로 다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렇게 하는 것은 자녀들의 인생을 망쳐주는 것입니다. 장성해서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절망에 빠지거나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모여서 술 마신다는 소문이 난 파 티에 청소년 자녀가 가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해야합니다. 불평을 쏟아 놓겠지만 내심으로는 고마워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울타리가 없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 입니다.
 
청소년기는 자아를 발견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의 가치관에 도전을 하게 됩 니다. 많은 부모에게는 이것이 반항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권위로 억누르려고 합니 다. 그러다가 자녀들과 충돌이 계속되면, 그만 지쳐버려서 “에라, 모르겠다.” 방치해 버 립니다. 그러나 방치하는 것은 권위로 누르려는 것보다 더 나쁩니다.
 
자녀를 잘 양육하려면 울타리를 쳐주고, 그 안에서 선택하는 법을 가르쳐야합니다. 예를 들어 어디 나갈 때, 어린 자녀에게 “너, 뭐 입을래?” 하면, 추운 날 얇은 옷을 선 택하든지, 공식적인 자리에 가는데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골라 부모와 충돌을 일으키 게 됩니다. 선택을 완전히 맡기지 말고 옷 두 개를 골라주면서 “너, 빨간 옷 입을래, 파 란 옷 입을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울타리 안에서 선택입니다.
 
목회가 자녀 키우는 것과 유사해서 그런지, 목회에도 울타리 안에서의 선택이라는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칙이라는 큰 울타리를 쳐주고 성도들이 그 안 에서는 재량껏 사역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창의력을 발휘해서 사역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계명이라는 울타리를 쳐주시고, 그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울타리 안에서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리이고, 우리가 이 원리를 좇아 자녀들을 양육하면 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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