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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툰 이유?

다운교회 0 254
우리는 요즈음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하여 경건의 시간(QT)이나 새벽기도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사도행전 15장의 끝부분을 묵상하게 될 터인데, 그 내용은 2차 선교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툰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왜 믿음의 사람들이, 더구나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다투었을까 자주 궁금하게 생각해왔습니다. 이번에 묵상했던 내용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바울은 바리새파 중의 한 사람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까지 쫓아가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으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원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도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때에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일부터 다메섹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것까지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께서 일을 맡기시기 위하여 따로 세우도록 하실 때에도 성경은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울보다 바나바가 더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고 바나바의 이름과 함께 나올 때에도 “바울과 바나바”로 순서가 바뀌게 됩니다. 그래도 그 뜻이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바나바는 바울을 도와 사역을 순조롭게 진행해 나갔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안디옥에서 전도하고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루스드라에서도 전도를 하였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던 듯이 보입니다.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한 사람들에게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할 때에도 바울과 바나바는 일치된 마음으로 그들과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13부터 다시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리더십의 문제에 갈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가서 신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일이 터졌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하지 않은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끝내 그들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함께 일을 하다보면 은사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 지가 오래 되었더라도 앞에서 다스리는 은사를 가지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뒤에서 묵묵히 섬기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거나 행정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앞에서 지도하는 역할을 맡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일인자로서의 은사보다는 이인자로서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저보다 더 지도력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후임자로 세워지면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이 없도록 주의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심히 다투고 서로 갈라설 필요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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