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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에서 배운 한 가지

이경준 목사 0 256

곳에는 신약시대의 건축 구조의 집이 아직도 있었다. 집안은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2층에는 따로 문이 있었고, 아래층에는 정문이 있었다. 아래층의 정문에는 문지방 밑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곳은 나그네가 찾아왔을 때에 음식을 대접하고자 음식을 건네주었던 구멍이었다. 밤에 이웃이 찾아와서 밖에서 음식을 달라고 요구할 때 문을 열지 않고 문 밑으로 음식을 주었다고 한다. 집안의 구조는 2층으로 되어 있었고, 1층은 음식을 먹는 식당과 그릇을 넣었던 찬장, 식량을 보관하였던 쌀통과 잠을 잤던 안방이 있었고, 아래 1층 옆에는 짐승들이 살았던 마구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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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음식을 먹었던 그릇은 그릇 하나에 음식을 담아서 모든 식구들이 한 그릇에 손을 넣어서 음식을 꺼내 먹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 때에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그릇에 손을 넣을 때에 그도 함께 그릇에 손을 넣었던 것이다. 당시에 하나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한 피를 나눈 형제들이나 가족 식구들, 혹은 친한 친구들인 경우에나 한 그릇에 음식을 함께 놓고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는 한 형제요 친한 친구의 관계로서, 이런 관계를 갖고 있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 넘겼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베들레헴이 본적지였다. 그래서 자기의 본적지에서 호적을 올리고자 베들레헴에 갔다. 신약시대에는 마을에, 혹은 가문에 손님이 오면 손님을 모시기 위한 다락방(성경에는 사관 또는 여관으로 번역)이 있었다. 당시에 요셉이 자기 고향인 베들레헴에 호적하고자 왔을 때에는 다른 많은 일가친척들도 호적을 하고자 모여들었다. 그러므로 호적하고자 일찍 왔던 사람들이 먼저 방을 모두 차지하였고, 요셉과 마리아는 늦게 도착하여 쉴 만한 방이 없었다. 예수님을 임신한 만삭이 된 불편한 몸의 상태로 먼 길을 걸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늦게 고향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는 방이 없어 집안에 있던 1층 마구간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쪽 지역의 사람들은 집안에 손님이 찾아 올 때에는 손님을 위해 마련해 놓은 다락방을 내어 준다고 한다.

 

또한 안방에는 두루마리와 같은 겉옷을 걸어 놓았는데, 신약시대에 겉옷은 저녁에 잘 때에 이불로 사용을 했다. 또한 외출 시에는 외출복이고 일을 할 때에는 일복이었으며, 용변을 볼 때에는 이 겉옷으로 몸을 가리고 일을 보았다. 그러므로 성경에 남의 겉옷을 저당 잡았을 때에는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하였다. 이들의 겉옷은 생명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안방은, 창문이 매우 작기 때문에, 매우 어두웠다. 그러므로 동전 하나를 잃어버리면 매우 찾기가 힘들었다. 적은 동전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벌어서 여자에게 준 돈을 잃어버리면 여자는 자기의 정직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으면 그만큼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동전 하나를 잃었다가 찾으면 기뻐서 이웃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는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 침상 채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내려왔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당시에 남의 지붕을 뚫으면 주인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붕을 뚫은 것이 아니다. 신약시대에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방안의 뜨거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고자 천정에 구멍을 뚫어 두었다. 여름에는 이 구멍을 열어 놓고, 겨울에는 돌로 막아 놓았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사건은 지붕을 뚫은 것이 아니고, 지붕위의 환기통을 막아 놓았던 돌을 열어서 침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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