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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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목사?

다운교회 0 283
오래 전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승합차를 마련하기 위해 중고차를 하나 구입하였습니다. 보통 새 차를 구입하면 구입한 날로부터 몇 년 이내, 또는 주행거리 몇 m까지는 무상으로 수리를 해주는 항목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차를 구입한 후에 무상으로 수리(A/S)를 받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에서 점검을 하였는데, A/S를 해줄 수 있는 주행거리를 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기판에 나온 주행거리와 실제 주행거리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차를 판 사람이 계기판 주행거리를 작게 나오도록 조작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내용증명’을 차를 판 사람에게 보내도록 지시를 하였습니다. 내용증명이란 법률서식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기 전에 미리 알아야할 내용을 통보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지요.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일전에 판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계기판에서 조작을 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때문에 자동차 판매대금을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차액을 돌려주든지, 아니면 환불해주고 자동차를 되돌려 받으라는 통보를 합니다. 마지막에는, “최악의 경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형사고발을 하거나 법적인 단계를 밟을 것이므로, 신속한 조치 및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공신력 있는 문서를 만들어 상대방에게 발송합니다.  

이런 일을 경험해 보지 않은 분들은, 왜 목사인 제가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물론 저도 사람을 고발하고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십시오. 차 값을 수백만 원 더 받기 위하여 계기판의 주행거리를 조작할 정도의 사람과 점잖게 이야기를 해서 원만한 결론을 길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내가 법을 아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시켜주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제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경우와 같이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우선 ‘내용증명’과 같은 법적인 첫 단계를 밟아놓고 일을 진행해야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착한 목사님은 아니시네요.”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그런 착한 목사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만일 그분이 이야기한 것처럼, 제가 ‘착한 목사(?)’가 되어 내용증명을 보내지 아니하고 당사자를 만났다고 가정을 해보지요. 계기판의 주행거리까지 조작을 한 사람이 순순히 부당하게 취한 수백만 원을 바로 저에게 돌려줄까요? 그럴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만일 그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악한 일을 하지 않았겠지요.

만일 그 결과 제가 돈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 저는 착한 목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 손해를 교회에 입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교회 재정에 손해를 입히고 악한 사람에게 돈을 더 주고, 저는 착한 목사가 된다면, 그것은 착한 목사가 아니라 제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 식의 착한 목사가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과연 ‘착하다’는 말의 정의를 성도님들은 어떻게 내리고 계십니까? 저는 이 경우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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