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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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것인가, 궁상을 떠는 것일까?

다운교회 0 282
누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의 문화가 된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검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성도들 중에 검소하게 사시는 분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검소한 삶이란 그저 단순하게 사는 것(simple life)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살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낮게(simpler lifestyle) 살면서 다른 선한 일에 힘쓰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몇 주 전에 평소에 검소하게 살고 있는 자매 한 사람이 앞부분에 제법 큰 구멍이 나있는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멍이 나있는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라면, 그것이 드러났을 때 그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검소하게 살기 때문에 구멍이 난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드러나도 여간해서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 구두 앞부분에 구멍이 났네. 이야, 어떻게 구두를 구멍이 나도록 신느냐?” 하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역시 자매는 별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역시 목사님이 보셨네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발이 너무 가벼워서 신고 있어요. 비오는 날은 못 신어요. 물이 들어오거든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는 제 장난기가 발동을 하였습니다. “내가 때워줄 테니까 나중에 구두를 가지고 오라.”고 말이지요.

약 두 주 후에 자매가 구두를 봉투에 넣어가지고 와서 제 방에 놓아두었습니다. “목사님, 신발 드디어 가져왔습니다! ooo 드림”이라는 메모가 봉투 안에 같이 들어있었습니다. 마침 제 벨트 가죽과 그 구두 가죽의 종류가 비슷했습니다. 제 벨트의 길이도 마침 넉넉하여 두 조각을 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양쪽 구두에 덧댄 가죽이 대칭이 되도록 똑같이 자른 후에 본드로 튼튼하게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혼자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누군가 이 시간에 내 방에 들어와서 “목사님, 궁상 좀 그만 떠세요.” 한다면 무어라 대답을 할까?’ 저는 분명히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이건 궁상을 떠는 것이 아니라 검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궁상을 떠는 것과 검소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궁상을 떠는 것과 검소한 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왜냐하면 우리가 검소한 생활은 추구해야 하지만, 궁상을 떠는 것은 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이런 기준 저런 기준을 생각하다가 결국은 쉽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웃으면서 할 수 있으면 검소한 생활’이요, ‘찌푸리고 하면 궁상을 떠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자전거는 꼭 중고를 사주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에 자전거를 여러 대 사주었지만, 늘 중고 자전거를 사주었습니다. 새 것을 사줘봐야 한두 달만 지나면 중고와 다를 바가 없고, 두 해만 지나면 다리가 길어져서 곧 바꾸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성인용 자전거(26인치)를 살 때는 새 것으로 좋은 것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대로 하였습니다. 중고를 사는데 아이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중고를 산다.’든지 하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새 자전거를 살 만한 충분한 돈이 지갑에 있는 것을 보여주면서, 검소한 삶에 대한 철학 때문에 중고 자전거를 산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고운 샌드페이퍼와 스프레이 페인트와 아이들이 붙이고 싶은 스티커를 사도록 했습니다. 집에 오면 녹슨 부분을 닦고 페인팅을 한 후에 아이들이 붙이고 싶은 곳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리하면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제가 궁상을 떨면서 중고 자전거를 사주었으면 아이들은 타고 나가기를 꺼려했을 것입니다. 궁상은 떨지 말고, 검소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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