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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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다운교회 0 242
저는 제가 준비한 설교를 삶에 적용했던 이야기를, 주일 예배 설교에서, 비교적 많이 예로 드는 편입니다. 이것은 선배 목회자들이 대부분 금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이 금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목회자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특히 연약한 부분을 성도들이 알게 되면 목회자에 대한 성도들의 존경심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도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목회 경험에서 나온 권면이지요.

어떤 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빌립보서 4:9)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은, 설교나 강의로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나누고 보여주기 전에는, ‘본 것들’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저희 집을 공개하고 제가 성경말씀을 어떻게 제 삶 가운데 적용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여러분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 간에 갈등을 한 이야기나 제가 실수한 이야기는 나누는 것이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 관한 이야기일 경우에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누기도 합니다. 그리고 칭찬하는 이야기는 좀 민망하여 잘 나누지 못하는 편입니다. 물론 은근히 칭찬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요. 좋은 샘플을 들어두는 것도 여러분에게 유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 아내 칭찬을 노골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제 아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감사하게도...”입니다. ‘감사하게도’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실제로 감사를 잘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제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저희 집에는 95세이신 아버님과 90세이신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많으셔서 너무 기력이 없으신 아버님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요양센터에 모시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요양센터에 모시는 것이, 마음은 좋지 않지만, 곁에서 돌보시는 어머님에게도 힘든 일이고 전문기구를 갖추고 있는 요양센터가 나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두 달 전부터 요양센터로 모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제 아내가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까, 감사하게도...”로 말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생활력이 강하셨던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일이 며느리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로 말이 시작되어 그 다음 말이 저는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친척들이 우리 집에 많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맞지 않는 이 말에 저는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친척들이 우리 집에 많이 오면, 그만큼 할 일이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감사하다니?’ 제 아내의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스무 살에 저희 집에서 처음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저희 친척 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 아내의 말은, 그들이 저희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는데, 그때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지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사실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 집을 방문하는 친척들은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 제 아내에게서 복음을 듣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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