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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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아이에게 매를 대는 것이 옳을까요?

다운교회 0 300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고집을 꺾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전에도 고집은 있지만, 그래도 제 발로 걷지 못하니까 그나마 제 맘대로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생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 한 번 손을 대고 싶은데, 어디 손댈 데가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가정세미나를 하면 곧잘 나오는 질문이 “언제부터 아이에게 매를 대는 것이 옳습니까?”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말을 듣지 않을 때부터”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열세 살이 되어도 말을 잘 듣는 아이에게 일부러 매를 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후 몇 개월이 되지 않았어도 고집을 피우면 매를 맞아야 합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29:15)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에게는 이미 대학생이 된 아들이 둘 있습니다.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매를 댔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었고, 우리 둘째 아이에게 이제까지 두 차례 매를 댔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기억이 납니다. 그 애가 만 세 살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토요일 오후에 전 가족이 산책을 나왔습니다. 내 오른쪽에 큰 아이, 왼쪽에는 작은 아이, 그리고 그 옆에 제 아내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째 아이의 슬리퍼 좌우가 바뀐 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발 좌우가 바뀐 사실을 알려주며 바꿔 신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상하게 그날은 아이가 고집을 피우고 바꿔 신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약간 엄하게 바꾸어 다시 말했습니다. 몇 번을 말해도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아이의 신발을 바꿔서 신겨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제 손을 뿌리치고 잡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참고 부드럽게 제 손을 몇 차례 내밀었습니다. 아이는 자기 손을 등 뒤로 제치며 제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길에서 아이를 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저는 하는 수없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큰 아이는 아내에게 맡기고 둘째 아이만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저희 집은 연립아파트 5층에 있었습니다. 계단을 잘 오르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올라갔습니다. 아이에게 매를 대기 위하여 안고 계단을 오르는 아비의 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매를 대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매를 대기 전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다시 설명을 해주고 “아빠, 잘못했습니다.” 하며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막무가내였습니다. 부득이 매를 댔습니다. 끝까지 고집을 피우던 아이는 끝내 나를 이기지 못하여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미 용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매를 댈 때에는 반드시 용서를 하고 매를 대야 합니다. 용서는 했지만, 아이는 잘못한 벌로 매를 맞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집 유리창을 깼다면, 일을 저지른 그 사람은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했다고 해서 유리창 값을 변상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를 한 후에 매를 대야 진정한 사랑으로 매를 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를 대고 아이가 빌어야 용서를 해주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감정으로 애에게 매를 대게 됩니다. 이미 사랑으로 용서를 하고 용납을 한 상태에서 사랑으로 ‘사랑의 매’를 대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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