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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편지

(163)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오너라!!(이사야 48:20)

정용재 0 1442

혹시 영상예배가 너무 익숙해져서 더 편해지지는 않으셨습니까?  


5월부터 새벽설교 본문을 큐티인(QTin) 이라는 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큐티책도 좋았는데 굳이 바꾼 이유는, 이전 책은 묵상간증이 주로 출판된 책에서 발췌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큐티인에는 일반 성도님들의 진솔한 간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말씀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열매 맺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새벽 설교 본문이 신명기에서 이사야서로 바뀌었습니다. 새벽설교를 준비하는 저에게도 이사야서 묵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저와 함께 큐티교재를 바꾸신 분들에게는 적지 않게 당혹스러운 시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신명기를 새벽에 묵상할 때도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되어서 저에게는 하나님의 잔소리를 듣는 기분조차 들었는데, 이사야서에도 또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반복을 통해서만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명기는 축복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십계명에 순종할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다면, 지금 우리가 묵상하는 이사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실 새 일을 반복해서 예고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 일을, 그들이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새 일이 펼쳐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명하시는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것이 그 만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미국에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면에서 불편했지만, 17년이란 세월이 미국생활에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래서 나름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시골에서 사시며 응급실에 자주 실려 가시는 어머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열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당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은 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17년의 세월이 아니라 7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입니다. 지금 한국은 어떤 면에서는 미국보다 삶의 질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당시 바벨론은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었던 반면 예루살렘은 성벽도 성전도 무너진 위험한 땅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여정은 비행기타고 하루면 되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지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1000Km가 넘는 거리를 수개월에 걸쳐서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길이었고, 중간 중간에 강도와 자연재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하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나오너라.” “바벨론에서 떠나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 “성전을 재건하라.” 명령하십니다. 바벨론에서의 삶이 나름대로 많이 익숙해졌고 그런대로 살만했을 텐데도 목숨을 걸고 떠나라 명하시는 것입니다. 왜 떠나라고 명하시는 것일까요?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익숙해 져버려 안주해 버리고 싶은 바벨론은 무엇이며 어디일까요? 우리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향해서 떠나야할 우리의 예루살렘, 우리의 성전 재건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명하고 계실까요? 각자 삶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묵상하며 그 대답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혹시 집에서 영상예배 드리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나름대로 더 편해져버린, 작은 바벨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훅 들어왔습니다. 신앙으로 훈련된 분들에게는 영상예배가 나쁘지 않을 수 있어도, 이 기간이 더 길어지면 믿음이 연약한 목장식구들의 신앙과 우리 자녀 세대의 신앙은 다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영상예배에서 현장예배로, 위험을 감수하고 희생을 담아 출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석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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